작은 곤충이지만 생태계 지키는 ‘숨은 축’
국비 절반·자부담 절반, 민간 보전의 한계
보조금 사건 대법원 상고, 법적 공방 계속
소송 장기화에 연구·멸종위기종 관리도 차질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강원 횡성군 깊은 산속에 자리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약 7만3000㎡(2만2000평)인 연구소 한편의 수조에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물장군 수백 마리가 한 마리씩 분리돼 자라고 있었다. 물장군은 서로 잡아먹는 ‘동종포식’ 습성이 있어 개체별 관리가 필요하다. 살아 있는 물고기를 먹이로 공급하고 수질과 월동 환경까지 일일이 관리해야 한다. 생존율도 30% 안팎에 그쳐 안정적인 개체군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관찰은 필수다.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곤충을 연구해 온 이강운 소장은 “멸종위기종은 한번 손을 놓으면 그대로 사라질 수 있는 생태적 약자”라고 말했다. 멸종위기종은 보호종으로 지정되는 순간 채취와 거래 등이 엄격히 제한된다. 일반인에게는 존재조차 낯선 작은 곤충이지만 누군가는 먹이를 주고, 번식시키고, 생리와 생태를 연구하며 개체군을 유지해야 한다.
문제는 이처럼 오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보전사업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다. 정부는 민간 전문기관을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해 사업을 맡겨왔지만 환경부 규정에 따라 국고보조금과 자부담을 각각 50%씩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이 소장은 수익을 내기 어려운 멸종위기종 보전사업에 민간 자부담을 요구하는 구조 자체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문제는 현재 법정으로 옮겨져 이어지고 있다. 이 소장은 보조금 집행과 관련한 형사사건에서 1·2심 모두 유죄 판단을 받은 뒤 지난달 19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별도로 원주지방환경청이 내린 국고보조금 반환명령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도 진행 중이다. 변호인 측은 실제 투입한 자부담과 연구시설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환경청은 감사원 감사에서 부적정한 보조금 집행이 확인돼 법에 따라 반환명령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호랑이보다 관심 못 받는 곤충 “하나 사라지면 생태계에 구멍”
이 소장이 곤충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90년대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 자연생태 탐사단장을 맡으며 생태계 훼손을 직접 목격했고 이후 곤충 분류와 생태학을 공부했다. 1997년 지금의 횡성 연구소 전신인 생태학습장을 만들며 곤충 연구를 시작했고, 2005년에는 환경부의 제안을 받아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돼 본격적으로 멸종위기 곤충 증식·복원에 뛰어들었다.
주된 연구 대상은 붉은점모시나비·물장군·애기뿔소똥구리 등이다. 그중 붉은점모시나비 복원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세계 복원 사례집에 소개될 만큼 세계 유일의 성과로 인정받는다. 붉은점모시나비의 내동결 생존 메커니즘과 항균성 펩타이드 연구를 비롯해 여러 국제 학술지 논문도 발표했다.
연구소가 2023년까지 확보한 곤충 표본은 약 16만 개체에 달한다. 채집한 곤충을 건조해 표본으로 만들고 종과 채집 지역 등을 기록해 디지털 자료로 축적했다. 이 소장은 “이런 자료는 단순히 곤충을 모아놓은 게 아니라 어느 지역에 어떤 종이 살았고 개체 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멸종위기종 가운데서도 곤충은 대중적 관심에서 특히 멀다. 이 소장은 “멸종위기종 하면 호랑이나 북극곰처럼 눈에 띄는 동물을 먼저 생각한다”며 “곤충은 연구자의 영역에만 남겨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곤충의 이뤄내는 역할이 작은 것은 아니다. 소똥구리는 야생동물의 배설물을 분해하고 파리 등 다른 곤충의 과도한 증식을 억제한다. 물장군은 수중 생태계 상위 포식자로 황소개구리 등 외래종을 잡아 먹는다. 연구소가 물장군 한 마리씩을 따로 관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소장은 “물장군처럼 생태계 피라미드 위에 있는 종이 없어지면 그 아래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멸종위기종을 살리는 데 필요한 노동은 일반적인 사육과도 다르다. 애기뿔소똥구리를 증식하기 위해서는 살충제 등이 섞이지 않은 소의 배설물이 필요해 연구소는 약 1만평 규모의 목초지를 조성하고 직접 소까지 키웠다. 배설물을 수거해 영하 30도에서 냉동해 기생충 등을 제거한 뒤 다시 먹이로 공급했다.
이 소장은 이런 특성을 두고 멸종위기종을 ‘말기 암 환자’에 비유했다. “병원도 필요하고 의사·간호사·치료제가 필요하듯 멸종 직전까지 간 종을 되살리려면 전문인력과 노력이 끊임없이 들어간다”는 설명이다.
국가사업인데 민간이 절반 부담…보조금이 법적 분쟁으로
법정으로 이어진 갈등의 핵심에는 ‘50대50’ 구조가 있다. 현재 민간 서식지외보전기관은 사업비의 절반을 자부담으로 확보하면 국가가 나머지 절반을 국고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원주지방환경청 관계자도 “민간 단체에서 자부담금 50%를 확보했을 때 국가가 50%를 지원하는 분담 비율로 국고보조금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기준보조율 표에는 서식지외보전기관 지원사업의 고정된 국고보조율이 별도로 명시돼 있지 않다. 서식지외보전기관 설치는 원칙적으로 보조금 지급 제외사업에 포함되지만 환경개선특별회계를 통한 지원사업은 예외로 규정돼 있다.
이 소장은 이 구조가 멸종위기종 보전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보호종은 마음대로 채집하거나 거래할 수 없는 데다 보전사업에 집중하면서 기존 생태교육 사업까지 축소돼 자체적으로 수익을 만들기 어렵다고 했다.
연구소 측은 약 7만3000㎡(2만2000평)의 개인 소유 부지와 연구·사육시설, 이 소장의 무급 노동 등도 실질적인 자부담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련 소송 자료에는 항소심 재판부가 2017~2021년 연구소 측이 부담한 자부담금으로 약 7억4973만원을 인정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특히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서는 참여 연구원의 인건비와 기존 연구시설·장비 등을 현물부담으로 인정하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어 멸종위기종 보전사업에서도 장기간 투입되는 시설·인력 등을 자부담으로 어떻게 평가할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다만 보전사업의 공익성과 보조금의 적법한 집행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게 환경청 입장이다. 원주지방환경청 관계자는 감사원 감사에서 다른 보조사업의 국고보조금을 자부담 인건비로 충당한 사례 등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비 거래 과정에서 실제 지급액과 장부상 금액 사이에 차이가 난 뒤 일부 금액을 돌려받은 사례도 감사 결과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환경청 관계자는 “감사 결과 부적정하게 집행된 내용에 대해 반환명령을 내렸다”며 “홀로세 측이 반환명령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해 현재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호인 측도 보조금이 원래 신청한 용도와 다르게 사용됐다는 법원의 판단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국가가 수행해야 할 공익적 사업을 민간 전문가가 맡는 과정에서 실제 자부담이 상당 부분 투입된 점을 형사책임의 범위를 판단할 때 어디까지 고려할지가 쟁점이라는 입장이다.
현용선 대륙아주법무법인 변호사는 “항소심에서도 실제로 이 소장 측이 부담한 금액이 상당 부분 있다는 점은 인정됐다”며 “그런데 자부담을 약속한 방식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받은 보조금 전체를 사기로 볼 수 있는지는 대법원에서 판단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이 수행하는 상황에서 보조금법을 일반 사업과 같이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정책적인 문제도 있다”고 했다.
멈춰버린 연구 “살아 있는 생물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법적 다툼이 길어지는 사이 연구 현장도 흔들리고 있다. 이 소장은 감사와 재판에 대응하느라 지난 수년간 준비해 둔 연구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붉은점모시나비를 활용한 연구도 특허를 낸 이후 추가 연구에 차질을 빚고 있다. 그는 “5년 동안 재판 때문에 연구를 계속할 수 없었다”며 “논문까지 거의 준비해 놓고 마무리하지 못한 연구가 많다”고 말했다.
더 직접적인 문제는 살아 있는 개체다. 이 소장은 연구소에서 증식하던 소똥구리가 현재 “거의 폐사 직전”이라고 했다. 관리에 조금만 공백이 생겨도 개체군 전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연구소에서 안정적으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멸종위기종은 물장군이다. 연구소는 약 600마리를 개체별로 분리해 관리하고 있었다. 먹이용 물고기를 공급하고 동종포식을 막기 위해 한 마리씩 나눠 사육하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곤충들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 관리도 사실상 중단됐다. 수십년간 구축한 박물관·연구시설·표본 자료는 남아 있지만 이를 유지하고 후속 연구를 이어갈 인력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특히 이런 연구는 단기간에 다른 연구자에게 넘기기도 어렵다. 이 소장은 “대학에서도 곤충 관련 전공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며 “이 넓은 부지와 시설을 마련해 이런 일을 다시 시작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멸종위기종을 죽이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보전의 성과”라며 “살아 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한번 맡으면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다”고 말했다. 연구소 한편에서 지금도 한 마리씩 나뉘어 먹이를 받아먹는 물장군들이 멸종위기종 보전 정책이 풀어야 할 숙제를 보여주고 있다.
jookapook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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