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이전 자체 제외…근로조건 변화 객관적 예상 땐 교섭

계획 수립 중에도 가능…정보 공유·교섭 개시 시점 쟁점

통폐합 고용승계 보장에도 직무·근무지 변경 문제 남아

정부 “지침도 규범력”…기업 교섭 거부 적법성 보장 못 해

11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한국산업은행·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노동조합이 연 지방이전 반대 공동 집회에서 노조위원장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금융 경쟁력을 파괴하고 국가 경제에 치명적 악영향을 끼칠 국책은행 강제 이전 검토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연합]
11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한국산업은행·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노동조합이 연 지방이전 반대 공동 집회에서 노조위원장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금융 경쟁력을 파괴하고 국가 경제에 치명적 악영향을 끼칠 국책은행 강제 이전 검토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정부가 투자·이전 등 경영상 결정을 둘러싼 교섭 기준을 내놨지만 노사 갈등의 불씨는 남았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지침을 근거로 교섭을 거부하더라도 법원에서 적법성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의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와 공공기관 이전·통폐합에서도 근로조건 변화를 어디까지, 언제부터 교섭할지를 놓고 다툼이 예상된다.

3일 고용노동부는 ‘경영성과급 등 노동쟁의 대상 시행지침’을 통해 공장 신설·해외 투자·생산기지 이전 자체에 대한 반대나 철회 요구를 의무적 교섭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반면 구체적인 인력운영계획이 확인돼 근로조건 변화가 ‘객관적으로’ 예상되면 관련 사항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노동부는 지난 2월 개정 노조법 해석지침에서도 경영상 결정 자체와 그에 따른 근로조건 변화를 구분하는 원칙을 제시했으며, 이번 지침은 판단 기준과 사례를 구체화한 것이다. 노동부는 지침을 노동쟁의 조정과 부당노동행위 사건 처리의 기준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의무적 교섭 대상이 아닌 요구에 대해 사용자가 교섭을 거부하더라도 부당노동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기준도 제시했다. 다만 의무적 교섭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 노사의 자율적인 교섭과 합의까지 금지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권창준 노동부 차관은 지침이 정부 권한의 행사 기준을 정하고 이를 통해 노사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부당노동행위 판단에 규범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사건 처리 기준과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은 별개다.

대법원은 행정기관 내부의 사무처리 기준은 일반적으로 법원이나 국민을 구속하지 않으며, 그 기준에 부합한다는 이유만으로 처분의 적법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

지침을 따른 기업이나 공공기관도 교섭 거부를 둘러싼 분쟁이 소송으로 이어지면 법령과 실제 요구 내용, 근로조건 변화 등을 토대로 별도의 판단을 받을 수 있다.

현장에서는 경영상 결정과 근로조건 변화의 경계를 가리는 일이 쟁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30일 광주에 약 400조원을 투자해 신규 반도체 공장 2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는 지난 7월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를 2027년 교섭 의제로 다루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침에 따르면 공장 건설을 철회하라는 요구와 사업 추진에 따른 배치전환의 기준·절차, 근무형태 변경, 통근·이주비 지원 등을 협의하라는 요구는 구분해야 한다. 공장 신설 자체가 의무적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련 교섭 요구 전체를 배제할 수는 없는 셈이다.

공공기관에서는 지방 이전과 통폐합 과정에서 비슷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정부는 이날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을 통해 공공기관과 자회사 등을 개편해 기관 수를 109개 줄이겠다고 밝혔다. 발전공기업 5개사와 지역별 항만공사 4곳을 각각 하나로 통합하고,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도 합친다. 대한석탄공사는 부채 처리와 관련 법 개정을 거쳐 청산한다.

노동부 기준에 따르면 이전이나 통폐합 방안이 발표됐다는 사실만으로 관련 요구가 모두 의무적 교섭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정 자체의 철회 요구와 그에 따른 고용승계·배치전환 등 근로조건에 관한 요구를 구분해야 한다. 권 차관도 공공기관 이전을 경영상 결정으로 보면서도 “그에 부수해 배치전환을 하면 교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임원을 제외한 통폐합 기관 직원의 고용승계를 보장하고, 통폐합 전후 처우가 저하되지 않도록 보수체계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노정협의체와 주무부처·개별기관 노조 간 협의도 병행할 계획이다. 따라서 기관 폐지나 통합을 곧바로 직원 해고로 연결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고용승계가 모든 근로조건의 유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발전 5사 통합안에는 ‘중복인력의 효율화’가 제시됐고, 항만공사 통합안은 기존 공사를 통합법인의 지역지사로 개편하도록 했다. 고용과 보수가 유지되더라도 담당 업무나 소속 조직, 근무지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구체적인 인력운영 방안을 따져야 한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둘러싼 노조 반발이 거세다. 금융노조는 지난달 27일 국책은행 지방 이전 저지와 주 4.5일제 도입 등을 내걸고 9월 4일 총파업 방침을 밝혔다. 본사 이전 계획을 수립할 때 노조에 미리 알리고 합의하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도 제시했다.

지방 이전과 이번 통폐합은 별개 사안이지만, 조직·근무지 변화에 노조가 어느 단계부터 관여할 수 있느냐는 공통 쟁점이 있다. 통폐합 대상 공공기관에서도 개편 과정의 노조 참여와 교섭 범위를 둘러싼 반발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관건은 근로조건 변화를 언제부터 객관적으로 예상할 수 있느냐다. 지침은 투자 발표나 중장기 경영계획, 경영진의 추상적인 언급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봤다.

다만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의 구체적 계획이 수립 중이거나 결정된 사실이 사내 공지, 노사협의회 자료, 교섭 과정의 사용자 확인 등을 통해 드러나면 관련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최종 확정이나 공식 발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계획이 얼마나 구체화됐는지를 노사가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아직 인력운영 방안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보고, 노조는 조직개편이나 사업 추진에 따른 인력 이동이 충분히 예상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관련 정보가 정부와 사용자에게 집중된 상황에서 노조가 어떤 자료로 근로조건 변화를 확인할지도 과제다.

지침이 제시한 구분만으로 교섭 범위와 시점을 둘러싼 다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투자·이전·통폐합에 따른 구체적인 인력운영 정보를 언제 공유하고, 어떤 근로조건을 교섭할지에 관한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

정부가 약속한 노정협의가 개별기관의 교섭과 어떻게 연결될지도 지침의 현장 적용 과정에서 쟁점이 될 전망이다. 권 차관은 “법을 뛰어넘어 쟁의 범위를 제한하는 지침이 아니다”라며 “노사 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노조 “노봉법 따라 메가 프로젝트도 교섭대상”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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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가 삼성전자가 정부의 ‘메가 프로젝트’ 일환으로 광주 반도체 팹 2기 신설 등을 포함해 국내에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806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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