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환 헤럴드경제 G밸리 논설위원
▲노재환 헤럴드경제 G밸리 논설위원

[헤럴드경제 = G밸리 노재환 논설위원 기자]열대야의 여파로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행여 질세라 맹렬히 세력 다툼을 하던 잡초들이 기세를 잃고, 그 푸르렀던 싱싱함을 미련 없이 내려놓은 모양새가 애처롭다. 바야흐로 주어진 삶을 마무리하는 짧은 순간이라고 하기엔 이르지만 올해는 그렇게 단비를 기다리며 몸부림치는 한해로 마무리될 것이다. 잡초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나 이렇게 살았습니다’라고 흔적을 남기려는 몸부림으로 말이다.비단 들녘에 널린 여러 식물뿐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덧 50대의 중심축에 섰다. 오늘따라 젊음이 더 절절하다. 그러나 하나부터 열까지 비탄스럽기만 한 것일까. 그동안 간신히 지탱하면서도 안 그런 척 위세를 부렸던 것들을 느슨히 풀어버릴 수 있는 여유. 돌아갈 수도 가기에도 힘에 벅차지만 긴 호흡 내뱉으며 후유, 그동안 잘 왔고 앞으로도 잘 가야지라며 지게꾼이 무거운 짐을 하나 둘씩 내려놓듯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들을 홀가분하게 내려놓아도 되는, 아니 은근슬쩍 내던져도 아무도 흉보거나 탓하지 않는 연륜. 그동안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움켜쥐고 있던 것을 저만큼 던져 놓고, 마치 남의 흔적 구경하듯 흘끔거릴 수 있는 은밀한 능청. 그러나 무엇보다 옳고 그름에 대해, 밝고 어둠에 대해 큰소리로 지적하고 삿대질해야 했던 갑의 위치에서 어물쩍어물쩍 을의 자리로 옮겨온 이 홀가분한 자유를 어떻게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만원 전철 안에서 설사 잠자는 척 양보할 기미가 없는 젊은이들을 볼 때 ‘아직 늙은이로 보이지 않는 게야’라며 스스로 위로받을 수 있어서 좋다.어디 그뿐인가. 출가한 딸과 출가를 앞둔 아들이 아버지 세대가 생명 바쳐 희생해 준 덕분에 대한민국이 이런 풍요를 누린다며 마치 그 노고에 보답이라도 하듯 지극정성으로 누르곤 하는 어깨 부위의 느낌이 더없이 따뜻해서 좋다. 문득 떠올려 보는, 내 가문을 이어 줄 후손들을 생각하며 지나간 세월 역시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더라도 흑백영화의 잔상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꽁꽁 얼어붙은 대지 위로 겹겹이 쌓이는 눈보라의 계절이 그러하고, 앞이 안 보이는 안개 더미 때문에 목이 쾌쾌했던 지루한 봄 또한 그러하다. 지겨운 우렛소리와 함께 쏟아지던 폭우로 지천이 물바다가 되거나 열대야로 몸살을 앓던 시끄러운 여름까지 떠나보내고, 바람 한 점 불 때마다 우수수 벗겨지는 가을의 정점에 선 들판을 마주할 시점이다.아무리 붙잡고 발버둥 쳐도 잡히지 않고, 용납되지 않는 강물 같은 세월, 그냥 유유히 흘러갈 뿐인 삼라만상 불변의 진리가,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된다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던가. 불가에서 이르기를 중생이 네 겁이라고 했던가. 무릇 성하면 반드시 쇠함이 있고, 화합하여 모인 것은 이별을 거쳐, 괴멸되어 마침내 공무(空無)에 이른다는 대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순간이다.그렇게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절대로 슬픔이나 비통의 대상이 아니다. 도리어 클라이맥스라는 마지막 반전이 기다리고 있어서 더욱 가슴이 벅찬 시기인지도 모른다. 대단원의 막이 내를 때까지 장엄함을 잃지 않으리라.아무리 아침이 신선하고 화려했어도 저녁노을의 장엄한 파노라마가 없다면 마침표를 찍지 못한 문장처럼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나이 듦 또한 대자연 앞에서는 호사를 누리는 축복이다. 중도에서 시지 부지 소멸되지 않고 끝까지 수를 다한, 흡사 전 구간을 완주한 마라토너 같은 늠름함. 그 마지막 끝을 바르게 그리고 장엄하게 장식하기 위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몸부림. 생각해 보라. 한여름 땡볕을 만나지 못했다면 가을의 알곡이 탱탱하게 여물 수 있으며, 과일의 과즙이 달콤한 당도를 머금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보면 세상의 모든 결정적인 결실은 중년을 지난 노년기에 접어들 때쯤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눈을 들어 허공을 본다. 마지막까지 남아 더욱다홍빛으로 물든 함박눈 속의 홍시보다 더 선명하고 아름다운 모습이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