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당 ‘라연’ 김성일 책임주방장 신라호텔서 28년동안 한식만 연구 전통음식 어긋남없이 바르게 해석

달라진 건 없었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다음날인 8일에도 김성일(53) 라연 책임주방장은 어김없이 오전 8시 안에 출근해 예약을 확인하고, 식자재를 점검하고, 요리를 하며 12시에 손님을 맞을 채비를 했다.

그는 지난 1988년 신라호텔에 입사해 한식만을 연구해왔다. 8일 라연에서 만난 김 책임주방장은 “호주에 이민을 가려고 조리사 자격증을 땄는데 어머니께서 갑자기 편찮으셔서 가지 못하게 됐다. 다른 특급호텔 서류전형에도 합격했는데 신라호텔이 삼성그룹이니 좋을 것 같다는 부모님의 조언에 따라 신라호텔에 입사하게 됐다”고 했다.

8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라연’에서 김성일 책임주방장을 만났다. 그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정통 한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미쉐린에서 좋은 점수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8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라연’에서 김성일 책임주방장을 만났다. 그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정통 한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미쉐린에서 좋은 점수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강산이 세 번은 바뀔 28년 동안 한자리에서 묵묵히 요리 외길을 걸어온 그의 뚝심은 미쉐린 가이드 별 3개라는 큰 수확을 가져왔다. 신라호텔의 한식당 ‘라연’은 지난 7일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에서 한국 최초 3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됐다. 특급호텔 한식당으로는 유일하며, 호텔 레스토랑 가운데 가장 높은 별점이다.

“미쉐린 3스타를 받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며 “저희는 ‘정통 한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미쉐린 평가원들이 한국적 요소를 감안해서 좋은 점수를 준 것 같다”고 김 책임주방장은 말했다.

그가 말하는 정통 한식이란 전통 한식을 넘어선 개념이다. 전통이 궁중음식이나 반가음식, 향토음식처럼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음식을 뜻한다면, 정통은 이같은 전통음식을 어긋나지 않고 바르게 해석하는 음식을 말한다.

김 책임주방장은 “요리는 ‘심플 이즈 베스트(Simple is best)’라고 생각한다”며 “정통 한식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한다. 퓨전 음식처럼 여러가지 요소들을 섞지 않고 단순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재료 본연의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라연은 ‘국내산’과 ‘제철 제산지’ 식자재를 원칙으로 한다. 조리, 식음, 기획, 구매팀이 함께 구성된 ‘제철 식자재 태스크포스(TF)’가 연간 100번 이상 전국의 산지를 돌아다니며 언제 어디서 가장 맛있는 식재료가 나오는지 찾아낸다. 김 책임주방장은 “매년 기후가 변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제철 제산지가 바뀌기 때문에 매번 맛을 보고 가장 맛있는 식자재를 공수한다”고 말했다.

국내산을 고집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한식이라면 국내산 식자재 사용해서 음식을 만드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고객들에게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훌륭한 식자재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냉동식품이나 화학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멸치가루, 다시마 국물 같이 천연조미료를 사용해 맛을 낸다. 때문에 라연의 음식은 먹고 난 후 속이 편안하고 소화도 잘 된다는 고객의 평이 많다.

배보쌈김치나 장아찌류 같이 한국의 발효식품을 적절히 사용하고, 자극적인 양념을 사용하지 않은 담백한 라연의 음식은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고객에게도 인기다. “색감이 아름다운 구절판이나 고급스러운 신선로는 외국 손님들이 특히 좋아하는 메뉴”라고 김 책임주방장은 전했다.

그가 철학을 지키며 요리할 수 있는 데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이부진 사장님은 라연이 문을 열기 전부터 한식 연구ㆍ개발에 많은 관심을 가지셨다. 직원들이 한식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해외 연수나 국내 벤치마킹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국빈도 많이 묵는 특급호텔로서 소명의식을 갖고 한식 고유의 정통성을 꼭 유지하라고 당부하셨다”고 김 책임주방장은 말했다. 이번 미쉐린 3스타 수상 후에도 이 사장은 “그동안 수고 많았다”며 격려의 뜻을 전했다.

미쉐린 별점은 기쁜 일이지만 그만큼 셰프들에게는 부담도 크다. 김 책임주방장 역시 “어깨가 무겁다. 더 강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당장 미쉐린 발표가 난 7일에만 300여통의 예약 전화가 걸려왔고, 예약이 평소보다 20배 가량 늘었다.

진짜 ‘스타 셰프’가 됐지만 그는 자만하지 않고 아직 더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오늘(8일) 홀에 나와 고객들에게 인사를 드렸는데 음식이 더 좋아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힘이 났습니다. 누가 언제 찾아와도 항상 동일한 수준의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라연이 한식을 더 널리 알리는 장소가 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김현경 기자/


pin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