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들이 은행의 돈줄 옥죄기에 극렬 반발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이뤄진 대부분의 수주 계약이 선박을 인도할 때 뭉칫돈을 받는 ‘헤비테일’ 방식으로 이뤄진 상황에서 선수금을 해당 선박에만 사용토록 하는 것은 배를 아예 건조하지 마라는 얘기와 같다는 주장이다. 돈줄을 쥔 은행과 돈을 빌려야 하는 조선사들의 해묵은 ‘RG 논란’이 재연되는 양상이다.
7일 조선업계와 은행권에 따르면 앞으로 국내 시중은행들은 조선사들이 발주처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해당 선박 건조 이외의 용도로 사용할 경우 ‘선수급환급보증(RG)’ 발급을 해주지 않겠다는 결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A선박 수주에 따른 선수금은 A선박 건조에만 사용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A선박 수주에 필요한 RG발급을 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조선사들은 그간 관행처럼 선박 수주로 받게 된 선수금을 타선박 제작이나 회사 운영자금 등으로 활용해왔다. 그리고 자금이 부족할 경우 배를 짓는 목적으로 은행들로부터 돈을 빌리는 방식(제작금융)으로 자금을 확보해 왔다. 그러나 은행들은 앞으로 이같은 관행을 원칙대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선수금은 반드시 해당 선박 제작에만 사용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조선사들은 “다 죽으란 얘기냐”며 반발하고 있다. 현재 건조중인 대다수 선박 계약이 ‘헤비테일’ 방식으로 체결돼 있어 앞으로 수주할 선박의 선수금이 묶이게 되면 다른 배를 건조키가 사실상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대우조선해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오는 4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가 4400억원이다. 오는 7월에는 3000억원이, 11월에는 20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해 이에 대응하는 것은 회사의 명운이 걸린 사안이다.
지난해부터 대우조선측은 회사채 우려에 대해 신규 선박 수주로 선수금을 받으면 이를 회사채 상환 등에 사용하겠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혀왔지만, 은행권이 선수금을 원칙대로 사용할 경우에만 RG를 발급해준다면 신규수주를 통한 회사 정상화는 아예 물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6000억원 안팎으로 알려지면서 당장 4월 위기는 넘길 가능성이 커졌지만, 선수금이 묶이게 되면 7월 만기가 되는 회사채는 선박 인도 외에는 방법이 없게 되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이 상황이 나은 것도 아니다. 하나은행이 주채권은행인 현대중공업 역시 업계 관행대로 선수금을 관리해왔다. 그런데 은행권이 선수금 운용 상황을 직접 관리하면서 RG발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자 자금 융통에 쉽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관행에 문제가 있었다면 차근차근히 풀어나가야 한다. 어느날 갑자기 ‘원칙대로’를 얘기하면 다 죽으란 얘기와 같다”고 말했다. 또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수주 자체가 쉽지 않은데 이제는 수주보다 더 어려운 것이 RG발급이란 얘기까지 나온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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