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의 기술』, 대다수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미합중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1987년, 그의 나이 41세에 출간한 회고록의 한국어판 제목이다.
이 번역서의 원제는 『Trump: The Art of the Deal』이다. 왜 ‘거래의 예술’이라 하지 않고 ‘거래의 기술’이라 했을까? 혹 예술(Art)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떤 고상함이나 미적 연상이 거래(Deal)와 관련될 때 일종의 어색함, 괴리감을 느끼는 우리나라 독자의 정서를 반영한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돈 때문에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나는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일종의 예술이다. 어떤 사람들은 캔버스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또 훌륭한 시를 쓴다. 그러나 (중략) 나는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다.’
‘관계(關係)’.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는 물론 정치, 문화, 예술, 과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관계’라는 단어를 매우 자연스럽게 그리고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어떤 방면이나 영역에 관련을 맺고 있음. 또는 그 방면이나 영역’이 그 주요 사전적 의미이다. 이 외에 약간은 민망한(?) 의미로도 자주 쓰여지곤 한다.
결국 ‘관계’란 무엇과 무엇이 ‘관련(relation)’되거나 ‘연결(connection)’ 지어진 상황이나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선, 이것을 논하지 않고는 마치 시대에 뒤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널리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 청사진도 본질적으로는 ‘관계의 재해석과 재구성’, ‘관계의 확장’이라는 것에 다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린 흔히 ‘따뜻한 금융’, ‘든든한 금융’, ‘스마트한 금융’을 이야기 한다.
예전의 금융은 ‘금융 자체를 위한 금융’이지 않았는가 돌아보게 된다. 금융자본 자체 내적 동인에 의한 확대재생산 과정 속에서 때로는 몰가치적이었으며 때로는 탐욕적이기까지 했다. 여기에 금융소비자, 즉 고객은 없었고 그래서 그 ‘관계’는 ‘기술’적이었다. 트럼프의 거래가 ‘예술’이 아니고 ‘기술’이듯이.
이제 넓고 깊은 고객의 금융지식 수준, 금융 IT 핀테크의 고도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전환기 속에서 금융은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야 하며 생존을 위해 이런 시대적 요구를 거스를 수 없다.
금융과 금융소비자, 금융과 고객자산, 금융과 IT. 이미 이들은 서로 밀접하게 상호 ‘관계’되며 격렬한 화학적 반응을 시작했다. 이 ‘관계’의 촉매는 ‘금융’이다. 이 화학반응의 결과물이 ‘따뜻하고 든든하고 스마트’해지기 위한 핵심가치는 금융소비자 ‘고객’이다. 어느 금융이 고객가치를 중심으로 관계하는가.
인간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영역과 고차원의 관계를 맺어나가는, 그래서 금융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다. 금융인은 ‘관계의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par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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