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경제의 근본을 잡는 일이다”(박상인 교수)
“소유출자구조 집중은 고용규제와 사회신뢰의 붕괴, 국민의 좌익성향이 영향을 준 것”(김현종 실장)
국내 대표적 재벌개혁론자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와 재계의 싱크탱크로 지배구조 개선 등에 대한 방어 논리를 제공해온 한국경제연구원의 김현종 기업연구실장이 맞붙었다.
박 교수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 등 소위 경제민주화 성향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지지하는 입장이고, 김 실장은 현재 재벌 지배구조의 문제는 과도하게 높은 상속세 등 기업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원인이 돼 만들어진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박상인 “지배구조와 거버넌스 개혁 동시에 이뤄야”= 첫 세션 첫번째 발제자로 무대에 오른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 발표문에서 “소유지배구조 개혁과 기업 거버넌스 개혁을 동시에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그 사례로 이스라엘의 재벌개혁 방향을 한국의 미래로 꼽았다.
박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이스라엘은 상장회사 가운데 2층 구조의 피라미드 기업집단만을 허용했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누가 해당 기업의 소유주인지가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기업집단의 경우에는 6년의 유예기간을 두되, 새로운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2층의 피라미드 기업집단만을 허용하는 제도를 즉시 도입했다.
또 이스라엘은 주요 금융기관과 주요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금산분리 원칙도 세웠다. 금융과 산업이 한 기업에 속해 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도덕적해이 문제를 금산분리를 통해 달성하겠다는 것이 이스라엘 재벌개혁의 방향이었다.
박 교수는 “지주회사 체제를 기업집단 단위로 지정하게 되면 순환출자와 교차출자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며 “출자 단계는 지주회사와 자회사 두층으로만 제한하되 자회사를 100% 출자회사는 허용토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재벌총수 일가의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를 막고 일감몰아주기, 부당내부거래,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탈취 등에 대한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힌 뒤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자사주를 처분할 경우 신주발행절차를 준용하고, 공익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경우 계열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의결권을 제한토록 해야 한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사람의 경우 상장기업의 경영이나 이사회에 아예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기업거버넌스 코드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재벌개혁 일정을 구체화하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박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경제구조 고도화 위원회(가칭)’를 통해 범정부적인 개혁 방안을 내년 초까지 제시해야 한다”며 “세부적 개혁 방안에 대한 내부 토론과 시뮬레이션 및 공개청문회를 개최하고, 위원회에서 제시된 개혁 방안을 담아 지방 선거 이후에 입법화 해야한다”고 밝혔다.
입법 작업이 완료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만큼 시행령과 지침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박 교수는 “내부 거래를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금지를 위해, 공정거래법(23조2)에 따른 시행령 38조를 개정해 적용대상과 위법성을 재정립 해야 한다”며 “보험업 감독 규정(별표11)을 개정해 총자산과 다른 회사의 채권 또는 주식의 소유 금액을 시가로 동일하게 평가하는 방안도 즉시 시행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종 “정부 개입 과도하면 경제 창의성 잃어”= 첫 세션 두번째 발표자로 무대에 오른 김 실장은 국내 대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행태의 원인이 과도하게 높은 상속세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영권 상속에 대한 과도한 세금 부여가 상속세 회피 수단으로서의 일감몰아주기로 이어졌다”고 진단한 뒤 “외국의 경우 가업승계 제도와 지분관리회사 제도, 주식의 상속증여에 예외를 적용해 경영권 승계가 가능토록 했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은 상속 증여세율(최고세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한국의 상속세는 50%로 노르웨이(10%), 덴마크(15%), 핀란드(19%) 등 북유럽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에 속하고, 미국(40%)이나 영국(40%) 프랑스(45%)와 비교하더라도 높은 편이다. 캐나다는 1972년에, 호주는 1979년에, 러시아와 싱가포르는 2006년과 2008년에 각각 상속세를 폐지한 바 있다.
김 실장은 트뤼도 캐나다 수상 사례의 실패에서 한국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1968년에 집권한 캐나다 트뤼도 수상은 미국 자본에 캐나다 기업들이 줄줄이 인수되자 캐나다 기업 방어를 위해 1971년에 캐나다발전회사(CDC·Canada Development Corporate)를 창립하고, 외국 자본이 캐나다 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에 대항하는 백기사 역할을 수행케 했다. 이렇게 보호된 캐나다 기업은 캐나다 정부 소유가 되거나 캐나다 민간 자본에 매각됐다.
김 실장은 “이같은 국수주의 정책 또는 국유화 정책 추진으로 1970년대와 80년대에 경쟁을 제한하는 결과가 초래됐다”며 “트뤼도 수상은 세금과 보조금 제도를 통해 인위적으로 석유와 가스 생산을 통제하려 했는데, 이로 인해 경쟁이 훼손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때문에 트뤼도 수상 집권 기간 동안 가족지배형 피라미드 기업집단의 비중이 증가했고, 소유분산형 단독 기업의 비중이 감소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가 캐나다 사례를 꺼내든 것은 정부가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하게 될 경우 경제 체질이 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키 위해서다. 김 실장은 “정부가 중앙집권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성향을 띌 경우 소수의 기업에 부와 권력이 집중적으로 편향되어 질 수 있다”며 “이는 곧 창의적 기업 경영활동을 제한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 집단 규제가 필요한 명확한 이유와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대표적인 대기업 규제 중 하나인 출자총액제한의 경우 도입 초기 규제의 목표는 경제력 집중 억제였으나, 이후엔 업종 전문화가 정책 목표가 됐고, 이후에는 구조조정 촉진이 규제의 지향점이 됐다. 최근에는 부당지원행위 규제에서 사익편취 방지를 위한 제도로 제도의 목표가 바뀌었다.
김 실장은 “경제력 집중을 억제키 위해 시작된 대기업 집단 규제는 지배구조 문제 해소를 위한 정책 목표로 바뀌었다”며 “지배구조상의 문제와 이를 해소키 위한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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