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심층 르포>

남대문로5가 · 동자동 쪽방촌

어른 한명 눕기도 비좁은 방…이불 등 살림살이 다닥다닥 바람은 커녕 숨쉬기도 어려워…폭염땐 서울역으로 피서가기도

서울역 인근 도심의 랜드마크인 서울스퀘어와 힐튼 호텔 사이, 과거 윤락가와 여인숙으로 유명했던 남대문로5가의 좁은 골목을 따라 걸으면 웅크린 듯 작은 문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낡고 허름한 건물 담벼락에 ‘월세 놓음’이라는 전단이 눈에 띈다. 사람들은 이곳을 ‘쪽방촌’이라고 부른다.

지난 22일 오후 찾은 이곳 쪽방촌은 30℃에 육박하는 한낮의 열기로 숨이 막힐 듯 했다. 인근 대형빌딩이 쏟아내는 도심의 열기가 고스런히 쪽방촌을 덮고 있었다.

더위를 견디다 못해 한 중년 여성은 물 한 바가지를 퍼다 집 앞에 뿌렸다. 골목 한 귀퉁이에는 대여섯명의 주민이 돗자리를 펴두고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나마 집보다 거리가 낫다. 건물 안에 들어서니 답답함은 한층 더했다. 대낮에도 볕이 들지 않는 복도는 어두컴컴했다. 양 옆으로 1~2m 간격으로 여닫이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가구당 하나씩만 허락된 문을 여니 어른 한 명이 겨우 몸을 누일 만한 공간이 나왔다. 그 옆으로는 옷이며 이불, TV와 밥솥 등 온갖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한데 쌓여 있다. 에어컨은 커녕 창문이라도 있으면 감지덕지, 선풍기도 사치였다.

초라한 살림살이가 한 눈에 들여다보여도 문을 활짝 열어둔 가구가 꽤 많았다. 한 주민은 “더우면 다들 문 열어놓고 잔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쪽방촌 주민들은 더위가 시작되면 서울역 인근으로 피서를 간다. 서울역파출소에 근무하는 장준기 주임은 “이른바 반숙을 하는 분들이 있다. 낮에는 서울역 근처 지원센터에서 잠을 자거나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여름이면 무엇보다 부족한 게 잠이다. 선풍기 틀고 문을 열어둬도 방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이곳 쪽방촌에 거주하는 김모(53) 씨는 “신경이 예민한 편이라 여름이면 두 시간도 채 잠을 못 잔다”고 했다.

그의 방은 그나마 창문이라도 달렸지만 바람은 좀체 통하지 않는다. 창이 있고 비교적 넓은 이 방은 한 달에 25만원으로, 다른 방보다 비싼 편이라고 장 주임은 귀뜀한다.

김 씨는 연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여름에는 제발 에어컨 한 대 있었으면 싶다”고 했다. 김 씨의 말을 들은 한 이웃은 “에어컨 달면 전기세는 어떻게 감당하려고…”라고 핀잔을 준다.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용산구 후암로 57번길로 접어들자 마을 주민 대여섯 명이 그늘 아래 옹기종기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주민들은 더위보다 장마가 두렵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가 오면 방 안에 세숫대야를 받쳐 놓고 살아야 하는 복고적(?) 풍경은 이 곳에서 낯설지 않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 안모(53) 씨는 “물 떨어진다고 동사무소랑 구청에 얘기해 봤는데 건물주랑 얘기해 보라는 말뿐이었다”며 “건물주 얼굴은 본 적도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안 씨의 방 벽면 곳곳에는 곰팡이 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는 이웃들을 돌아보며 “그래도 우리는 단합이 잘 돼서 장마철이면 비 안새는 곳으로 옮겨 함께 보낸다”며 했다.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안 씨는 “해 지는 방향 반대로, 그늘 따라 자리를 옮기는 게 전부”라며 겸연쩍어했다.

결국 의지할 데라곤 지원센터나 봉사단체의 손길 뿐이다. 남대문지원센터 관계자는 “물이나 쿨매트를 지원하기도 하고 더운 날에는 밤까지 쉴 수 있는 편의시설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했다.

반가운 소식도 있다. KT가 24일 쪽방촌 주민들이 무료로 카페와 샤워실 등을 이용하고 미술 치료도 받을 수 있는 시설을 개장했다.

하지만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있다. 동자동에 거주하는 정모(81) 할머니는 “내 방이 규정보다 넓고 부엌도 딸려 쪽방 주민으로 인정을 안 해준다”고 했다. 비록 방은 넓다지만 다른 쪽방촌 주민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그의 삶이다.

5급 지체장애인인 그는 “쪽방 주민으로 인정을 못 받으니 의료진이 와도 진료 못 받고, 멀리까지 목욕하러 다녀야 하는데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토로했다. 갓 여름의 문턱을 넘은 쪽방촌 주민들의 표정도 정 할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기훈ㆍ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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