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KBS ‘정도전‘의 타이틀롤을 맡았던 조재현은 100페이지가 넘는 시놉시스를 받은 당일 새벽 4시까지 읽었다. 3분의 1만 읽으면 성공이라 했지만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묘한 기분에 잠이 안와 맥주 한 캔을 먹고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강병택 PD에게 “이 대본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조재현은 “사극을 별로 안좋아했다”고 했다. 외모 때문인지 사극이 자신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놉을 읽고는 “이 시대 이런 사람이 있었을까?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왜 안알려졌을까? 내가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초중반에는 정도전보다 이인임,이성계가 더 부각됐다. 속앓이가 적지 않았다. 후반부에는 기회가 오겠지 라고 생각했다. 전체를 끌고가기 바쁜 정현민 작가에게 개인 캐릭터 어필은 자제해야 했다. 하지만 전체 50부중 40회가 왔는데도 큰 변화가 없어 작가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이성계는 인간적으로 그려졌고, 정몽주는 재탄생했고, 최영도 입체적으로 그려진 것 같은데 정도전은?”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답장을 보니 작가는 전체를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 전반 분량이 적어도 배려가 느껴졌다. 부분적으로 이인임이나 정몽주, 이성계가 주인공인 상황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의 시점으로 가지는 않았다. 그 분들이 골은 넣었지만, 게임의 전체 운영은 정도전이 했다. 그리고 정도전이 마지막 골을 넣게 해줘 고마웠다. 나약한 정도전의 인간적 모습, 다시 말해 대업을 위해 앞으로 나가면서 얼마나 고독했는지가 조금은 표현된 것 같다. 저마다 가슴에는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는 결말도 좋았다.”

조재현은 정도전 역할이 어려웠다고 했다. 우선 구어체가 아닌 대사. 이성계나 정몽주처럼 자신의 감정을 많이 드러내는 캐릭터와 달리 대업에 충실한 나머지 명분과 이념에 치중하며, 거의 공자급 수준의 대사를 소화해야 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조재현은 “도울 김용옥 선생이 정도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봤다”면서 “조선을 만들었음에도 잘 알려졌지 않은 건 아이러니다. 조선을 만들면서 정몽주를 부각시키고 정도전은 몸쓸 놈으로 만든 것 등 궁금한 부분이 많았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조재현은 정통사극이 부활한 것 같아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정도전이 양지와의 멜로를 엮어가는 허구가 방송되자, ‘정도전이 웬 연애질’이라는 반응이 나온 자체가 정통사극에 대한 열망이라고 본다. 젊은 시청자들이 정통사극에 열광한 것은 ‘정도전‘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다.”

조재현은 자신의 혈액형이 ‘트리플A형’이라 모든 댓글을 다본다고 했다. 캐스팅이 안어울린다는 정도의 댓글은 넘길 수 있지만, 자신을 새누리당 수구골통이나 MB와 연관돼 있는 인물로 보는 댓글에는 참기 힘들었다는 것.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경기영상위원회 위원장,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많은 직함을 맡았기 때문이다.

“내가 경기도문화전당 이사장으로서 잘한 일은 깨끗한 인사다. 어떤 권력자가 와도 문화는 흔들려서는 안된다. 정신과 문화는 정권 따라 바뀌면 안된다. DMZ영화제도 진보적인 영화제다. 정권의 상처를 가리면 안된다. 유인촌 장관 시절에도 2번 찾아가 쓴소리도 했다.”

조재현은 약간 욱하는 성격을 지녔지만 그의 솔직한 어법은 차별점이고 경쟁력이기도 하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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