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해준 기자]올 연초 소비자물가가 예상과 달리 매우 낮은 수준에서 안정세를 보임에 따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신중론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거나 경기를 조절해야 할 상황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대비 1.0% 올라 2016년 8월(0.5%) 이후 17개월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수산물(6.0%)과 석유류(4.5%)가 큰폭으로 오르고 개인서비스(2.0%)ㆍ집세(1.2%) 등 서비스 물가가 상승세를 보였지만, 지난해 1월 이상한파로 급등했던 채소류가 12.9%나 하락하고 축산물(-4.7%), 전기ㆍ수도ㆍ가스(-1.5%)가 내린 것이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한은이 물가 지표로 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는 전년대비 1.1% 오르는 데 그쳤다. 전월(1.5%)에 비해 0.4%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이는 외환위기 여파로 우리경제가 홍역을 치렀던 1999년 12월(0.5%) 이후 18년여만의 최저치다.
근원물가는 전체 460개 조사 대상 품목 가운데 계절적 변동이 큰 농산물과 해외시장 동향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석유류 등 53개 품목을 제외한 407개 품목으로 작성된다. 근원물가는 경기의 확장 또는 수축 등 경제상황 변화에 따른 기조적인 물가압력을 측정하는 핵심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근원물가가 이처럼 낮은 수준을 보인 것은 그만큼 우리경제의 물가압력이 낮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가중치가 높은 공업제품 가운데 가공식품(0.3%)과 내구재(0.6%) 물가 상승률은 0%대에 머물렀다. 가정용품ㆍ가사서비스(3.3%), 음식ㆍ숙박(2.8%) 등이 비교적 큰폭 오르고, 주류ㆍ담배(1.1%), 의류ㆍ신발(1.3%) 등도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으나, 오락ㆍ문화(-1.3%), 통신(-0.2%), 기타상품ㆍ서비스(-0.2%)는 하락하는 등 품목별 등락 속에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보인 셈이다.
이처럼 근원물가가 낮은 수준을 보인 것은 우리경제가 물가상승 압력을 우려할 정도로 빠르게 확장되지는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출을 중심으로 경기 개선세가 유지되고는 있지만, 이것이 투자나 소비 등 내수 부문의 수요 압력을 자극할 정도로 확산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경기 개선이 고용이나 소득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그 배경으로 꼽힌다.
물가 측면에서만 보면 한은이 금리를 올리기에 부담스런 상황이다. 다만, 한은의 통화신용정책 운용 목표에 물가안정(2% 목표)과 함께 금융안정을 규정하고 있어, 물가가 안정돼 있다 하더라도 금융안정을 위해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오는 3월 정책금리를 인상할 경우 한미간 금리가 역전(미국 금리가 한국 금리를 상회)되고, 이렇게 될 경우 한국시장에서의 투자자금 이탈 가능성이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은이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
한은이 금융안정을 위해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더라도 물가가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금융안정을 위해 금리 이외의 다른 정책 수단을 동원해 대처하고, 금리인상은 국내 경제상황을 감안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물가와 금융시장 사이에서 향후 한은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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