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희망하지 않는 이상 ‘심야 조사’는 지양하려고 합니다.”
“출석에 큰 무리가 없도록 일주일 전에 소환을 통보했습니다.”
“아직 소환되지 않은 분의 소재를 따로 파악하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로 소환통보했다는 사실을 검찰이 외부에 공개하며 덧붙인 공식적인 설명들이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을 소환하는 일인 만큼 예우를 갖추는 것은 물론 수사 전 절차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하는 모양새다. 특히 작년 6월 검찰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가 본격화된 이후 거처를 옮기며 두문불출해온 것으로 알려진 양 전 대법원장의 소재를 파악하지 않았다는 대목에서는 세심한 ‘인권 감수성’마저 느껴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은 과거부터 계속돼온 ‘인권 침해’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인권 관련 조직 신설과 외부 인사 영입 등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며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인 상태다.
실제 검찰은 과잉수사 등 피의자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작년 7월 대검 내 인권부를 신설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문 총장을 만나 검찰 내부에 ‘인권옹호부’를 신설하라는 지시를 내린 지 한달 만에 이뤄진 조치다.
대검 인권부에는 인권기획과·인권감독과·피해자인권과·양성평등담당관이 설치돼 ▷형사절차와 관련한 인권정책 수립 ▷피해자 보호 ▷인권감독 및 인권침해 조사 ▷양성평등 업무 등 인권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검찰 내 인권감독관도 확대 설치했다. 전국 5개 고검소재지 지검(서울중앙·대전·대구·부산·광주)에서 운영됐던 고검 검사급 인권감독관은 서울동부·남부·북부·서부 및 의정부·인천·수원지검 등에 추가 설치됐다.
법무부는 인권변호사 출신인 황희석 변호사를 첫 비(非)검사 출신 인권국장으로 임명했다. 이어 법무부 내에서 인권정책 실무를 담당할 인권정책과장에도 최초로 검사가 아닌 전문 공무원을 기용했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들을 미뤄볼 때 검찰의 인권개선 의지는 분명하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안돼 공과를 논하기도 이른 시점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검찰이 ‘인권옹호 조직’로 거듭나기 위해 이제 막 첫걸음을 뗐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양 전 대법원장 등과 같이 누구나 인정하듯 수사 및 조사에 예우를 지켜 야할 대상이 아닌 일반 피의자의 인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여전히 검찰 주변을 맴돌고 있는 수식어들은 ‘인권 검찰’이 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었다고 시사한다.
우선 ‘공소권 남용’으로 피의자를 괴롭히는 ‘쪼개기 기소’와 ‘별건 수사’는 관행화된 수사 기법으로, 그 힘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다. 여러 혐의를 시차를 두고 별도로 기소해 형사재판을 여러 차례 받게 하는 ‘쪼개기 기소’는 피의자의 금전적·정신적 부담을 키운다. 법조계에서는 자백하지 않는 피의자를 여러 번 재판정에 세우거나, 단독·합의부별로 혐의를 분리 기소하는 등으로 쪼개기 기소가 갈수로 진화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주요 혐의에 대한 인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피의자의 다른 혐의를 캐는 ‘별건수사’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관행이다. 무엇보다 가족을 소환할 수 있다는 압박은 조사 과정에서 방어권이 보장돼야 할 피의자에게 치명적이다.
피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는 강압수사 논란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의 ‘적폐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의자는 모두 세 명이다. 2017년 10월 국정원 소속 변호사 정모씨에 이어 변창훈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유명을 달리했다. 작년에는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세월호 유족을 사찰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통보 사실을 밝힐 당시 “이런 사안일수록 통상의 수준과 절차에 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직 대법원장에 대한 예우를 지키겠지만, 양 전 대법원장 역시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피의자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피의자 소환을 사흘 앞두고 문무일 검찰총장이 새해 신년사에서 강조한 ‘인권’이 위아래 모두를 향하는 의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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