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금융’ 위험요인 많아 전 세계 주목 대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도화선이기도 -미국 긴축회귀가 위험 높이고 있어 금융위 대책 시의적절 판단
위기는 어느 순간 느닷없이 닥치지 않는다. 비록 소소해 보일지라도 징조가 먼저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위기와 맞닥뜨리는 이유는 뭘까. 징조를 무시하거나 살피지 않아서다. 나태함 또는 교만이 원인일 수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되돌아 보자. IMF 사태가 발생하기 1년 전부터 이미 위험 신호가 감지됐다. 금융당국이 외환규제를 완화하자, 금융회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달러화 부채를 늘렸다. 특히 달러를 만기 1년 미만 단기로 빌려 쓰면서도 기업에는 이를 2년 이상 장기로 빌려주면서 위기를 자초했다. 돈을 빌려준 외국 채권금융기관이 만기 연장 없이 일시에 채무상환을 요구하면 궁지에 몰릴 상황이었다.
이에 일각에서 외화자산 건전성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수수방관했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우리나라는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신용경색을 피하지 못했다. 채권금융기관들의 대출금 상환 독촉에 시달리던 국내 금융회사들이, 이들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렸던 기업들이 줄지어 도산했다. 이것이 바로 외환위기의 전말이다.
뚱딴지 같이 위기를 들먹인 건 모처럼만에 반가운 소식을 들어서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4일 환매조건부채권(RP) 시장과 머니마켓펀드(MMF) 등 일명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System)의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종합적인 위험관리 방안을 내놨다는 거다.
전 세계적인 유동성 축소 현상으로 인해 미래 금융시장에 위험 신호가 감지되는 즈음에 나온 방안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림자 금융은 일반적인 은행시스템 밖에서 이루어지는 신용중개 혹은 신용중개기관을 통칭하는 말인데, 이미 10여년 전부터 우리 시대에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 존재로 지목돼 왔다. 은행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은행과 같은 엄격한 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 금융이 회자된 계기는 채권운용회사 핌코(PIMCO)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폴 맥컬리(Paul McCulley)가 지난 2007년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사용하면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림자 금융이 도화선이 됐다.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는 기초자산 MMF의 대량 환매 사태로 부도가 났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같은 미국의 대형 은행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자산유동화한 채권의 유통이 막히면서 파산했다. 그림자 금융이 미래 금융시장의 위기를 키울 화근으로 지목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더욱이 그림자 금융은 성장이 멈추지 않는 괴물이다. 2008년 이후 연평균 11.2%씩 늘어난 덕분에 2016년 말 기준 1800조원으로 성장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그림자 금융 비중은 129.4%로 미국(145.6%) 다음으로 높다. 프랑스(118.5%), 일본(96.8%), 독일(85.8%) 보다 비중이 높다.
금융당국이 현재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RP와 채권대차, 보험사의 환 헤지다. RP 거래는 헤지펀드의 레버리지 투자가 증가하면서 급성장 중인데, 익일물 거래가 지나치게 높은 거래 비중을 차지한다는 데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 국고채와 회사채, 특수채 등을 담보로 발행하는 환매조건부채권의 지급불이행 사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보험사는 외화자산운용 규제 완화 이후 외화자산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 이로 인해 환율 변동성 위험에 대비키 위한 환 헤지가 필수인데, 환 헤지 만기 불일치가 여전하다는 점을 위험 요인으로 받아들인다. 또, 채권 대차거래는 부실 펀드가 우량채권을 보유한 은행 등과 연계 거래할 경우 발생할 위험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위기는 경제위기다. 금융시장의 위험을 방치하면 경제가 고꾸라지는 건 한 순간이다. 1970년대말 오일쇼크 이후 경제위기는 모두 금융위기로부터 출발했다.22년 전인 1997년 IMF 외환위기가 그랬고, 11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가 좋은 예다. 금융위기는 10년여 주기로 반복되면서 세계경제를 위협했다. 미국의 긴축정책과 유럽경제 불안으로 말미암아 신흥국 금융시장은 지난해부터 요동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올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발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런 관점에서 금융위가 이번에 ‘그림자 금융’을 면밀히 들여다본 뒤 위험관리 방안을 내놓은 건 매우 다행스럽다 아니할 수 없다. 특히 뭔가 사고가 터진 뒤에야 대책을 내놓는 식이 아니라 사고 발생 가능성을 미리 감지하고, 위험요인을 사전에 제거하는 식의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는 점에서 박수 받아 마땅하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타개를 위해 양적 완화(유동성 공급) 정책을 펴는 동안 그림자 금융 자산은 급증했다. 그런 미국이 유동성 회수(긴축) 정책으로 돌아섰다. 그렇다면 위험요인이 상존하는 그림자 금융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변동성이 큰 금융자산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금융위가 만약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화와 자산시장의 이동을 유의미하게 지켜보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대책이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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