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0일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신년 기자회견장.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문 대통령은 신년사를 읽어갔다. 20여분 신년사 단어 하나하나가 실시간 속보로 전파를 탔다. 전 국민은 귀를 기울였고 문 대통령 입을 주목했다.
그 와중에 거론된 게 ‘스튜어드십 코드’다. 민주주의, 청년 일자리, 노동시간 개선, 그리고 재벌개혁으로 화두가 넘어갈 때 즈음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의지를 피력하며 스튜어드십 코드를 꺼내 들었다. 정확한 발언은 이렇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주주의결권을 확대하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겠습니다. 기업 활동을 억압하거나 위축시키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재벌대기업의 세계경쟁력을 높여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해묵은 풍경을 굳이 꺼낸 까닭은, 올해 3월에서야 이 발언의 ‘장단(長短點)’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스튜어드십 코드는 올해 3월 주주총회의 최대 화두다. 국민연금은 한진그룹과, 남양유업과 연이어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손익 계산을 해보자. 국민연금은 일단 스튜어드십 코드를 실행에 옮겼다는 데에 이익이 있다. 갑질논란으로 지탄 받은 기업에 경종을 울렸다는 신상필벌(信賞必罰)로 여론 지지도 받았다.
손해는 스튜어드십 코드, 정확히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의 속사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데에 있다. 자초한 측면이 크다. 기업 경영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진영과 이번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진영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 내에서 팽팽했다. 사회적 공감대가 없으니 예견된 혼란이었다. 무작정 칼부터 빼고 보니 어느 손에 칼을 쥘지조차 헷갈리는 형국이었다.
사외이사 후보를 선임하자는 주장에 수탁위 내부에서조차 “하고 싶어도 당장 후보군이 없지 않느냐”고 난감해 한 대목은 절정이었다. 개문발차(開門發車)는 정치권에서나 통용될 전략이지, 혈세를 다루고 기업 지배구조를 겨냥할 국민연금이 취할 건 아녔다. 결국, 한진가는 정관변경을 요구하는 선에서 애매하게 마무리됐다. 남양유업은 아예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배당성향 상향은 최대주주에 이익이기에 안 된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만 내놓은 채다.
어차피 국민연금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53.83% 지분을 보유한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일가와 처음부터 승산은 없었다. 국민연금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남양유업을 굳이 건드린 건, 좋게 말하면 명분이라도 얻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여론이라도 얻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양유업이 너무 노골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거절해버리니, 어째 지켜보기에도 머쓱할 지경이다.
주주민주주의 실현 차원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 자체를 반대할 실리도 명분도 없다. 오히려 재벌기업 중심의 한국 경제를 감안하면, 적극적으로 ‘집사(steward)’가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도 반길 일이다.
하지만, 설익은 칼춤은 당사자도 관객도 위험할 따름이다. 관객 눈치 보며 공약 맞추기식으로 꺼낼 칼은 더더욱 아니다. 명색이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라고 꺼낸 칼일진대, 더 날카롭고 명확해야 한다. 충분히 준비된 뒤에, 제대로 꺼내라.
김상수 IB금융섹션 증권팀장 dlcw@
=김상수
![요즘 ‘큰손’들은 주식 팔지도 사지도 않는다…‘11월 3일’부터 본다, 왜? [큰손 따라잡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7/news-p.v1.20260826.97fcdbca4f2c4562acc488b50990cb2d_T1.jpg?type=h&h=240)

![못 믿을 AI기업…검증하고 평가받게 하라[머브 히콕]](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7/news-p.v1.20260823.2391f1fe070840f39f8da5e471902ef7_T1.pn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