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우파지만 좌파 정책도 기꺼이 수용 · 채택…유럽 최장수 총리 역사를 쓰다

“자녀 없는 독신의 이혼녀, 구동독에서 태어난, 개신교 목사의 딸.”

지난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3선에 성공하자 미국의 CNN 방송은 그를 이렇게 설명했다. 구교가 주류인 독일에서 누가 봐도 주류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그가 최초의 최연소, 여성 총리라는 기록을 넘어 유럽 최장수 총리의 역사를 쓴 게 신기하다는 뉘앙스였다.

2005년 처음 집권해 오는 2017년까지 12년간 독일을 이끌게 된 메르켈. 외신이 공통적으로 분석한 그녀의 장수 비법은 화합과 포용으로 관통되는 엄마(Mutti) 리더십이다. 독일인들이 메르켈에게 표준어 어머니(Mutter)의 애칭인 ‘무티(Mutti)’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배경도 이를 짐작하게 한다.

그는 남을 비난하고 명령을 하는 데 인색하다. 그리스발 유로존 재정위기가 한창일 때도 메르켈은 그리스의 경제 정책을 비난한 적이 없다. 대신 그는 유럽연합(EU)이 아테네로 가서 공무원 휴가 단축, 고가 주택에 대한 세금 인상 등을 요구해 그리스가 재정 위기를 수습하도록 도왔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이 당시 그리스 지원을 두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라고 비난해 양국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독인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메르켈은 뭐든지 다” 먹는다. 메르켈은 중도 우파 정당인 기독민주당에 속해 있으면서도 종종 사회민주당(SPD)의 정책을 채택했다. 그의 신념이 연대로 요약되는 이유다. 메르켈은 임기 중에 좌파 정책으로 꼽히는 징병제 폐지 결정, 최저임금제 의무화 등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정치적으로 정반대에 있는 녹색당이 주장하는 원자력 발전소 폐기 정책도 추진했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새누리당과 정의당이 지방 연합정부를 꾸리고 대통령이 직접 정의당의 주요 정책을 이끈 모양새다.

위르겐 클린스만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 감독으로 지냈을 때 “여성 총리가 각 국가대표 선수의 포지션과 기능, 그리고 서로 간의 상관관계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놀랐다”고 했다. 메르켈이 단순히 축구 광팬이라서가 아니라 노조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무절제한 자본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시장주의를 추구하는, 메르켈 리더십의 남다른 면모가 아니었을까.

이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