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미리 증여해 세금 조금만 내자” 작년 아파트 증여 6만5438건 회피성 증여 사상 최대규모 전문가들 “시장 활성화 유도해야”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자녀를 명문대학에 보내기 위해 필요한 3가지’라는 주제로 국내에서 유행한 뼈 있는 우스갯소리 중 하나다. 최근에는 여기에 ‘할머니의 기획력, 아빠의 인맥’까지 추가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가족의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재력’이다. 정보를 알고, 기획력이 좋고, 인맥이 많아도 돈이 없다면 결국 무용지물이 될 공산이 크다.
대한민국에서 지난해 땅, 건물, 아파트 등 부동산 증여 건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1일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전국에서 이뤄진 건축물 거래 215만9022건 가운데 증여는 13만524건으로 조사됐다. 지난 2006년 통계가 나온 이래 최대치로, 2014년 8만여건의 증여가 이뤄진 걸 감안하면 4년만에 50%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서울에서는 건축물 증여가 1만3593건에서 2만9099건으로 늘어나며 전국 평균보다 증가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의 상징’ 중 하나로 급부상한 아파트의 경우 증여의 증가세가 더욱 가파르다. 지난해 전국 아파트 증여건수는 6만5438건으로 2014년(4만7652건) 대비 40% 가깝게 올랐다. 역시 사상 최대 기록이다. 서울로 한정할 경우 2017년 7408건에서 작년 1만5397건으로 불과 1년 사이 2배 이상 급등했다.
반면 가장 일반적인 거래 형태라고 볼 수 있는 아파트 매매는 매년 감소세가 이어지며 증여와 대비된다. 2014년 70만건에 달하던 아파트 매매건수는 재작년 61만건 수준까지, 작년에는 56만여건까지 내려갔다.
부동산 시장에서의 증여 선호 추세는 올해 더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고가주택과 아파트를 중심으로 공시가격을 ‘핀셋 인상’하면서 다주택자들이 양도세와 재산세 등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매매 대신 아예 이른 증여를 통해 장기적으로 절세하는 방안을 택하는 것이다. 극심한 거래절벽 속에 지난 1월 전국 아파트 매매 건수는 3만1305건으로 지난해 12월(3만3584건)보다 6.8% 감소했지만, 증여의 경우 같은 기간 5776건에서 5841건으로 1.1% 증가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국감정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집값이 많이 상승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가족에게 증여를 선택한 다주택자들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기준 서울 전체 25구의 주택 증여 건수 가운데 강남 3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29%에 달했다. 민 의원은 “공시가격이 오르면 재산세와 종부세를 포함한 보유세 부담이 늘어나 매도보다는 증여를 통한 절세를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여 관련 통계에서 볼 수 있는 또다른 특징은 저연령대 수증인, 이른바 ‘금수저’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증여세가 결정된 국내 10세 미만 어린이는 지난 2014년 1873명에서 2017년 3243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0세 이상 20세 미만의 경우 같은 기간 3861명에서 5309명으로 증가했다.
증여가 이뤄지는 금액 역시 늘어나고 있다. 증여재산가액 구간이 1억원을 넘는 10세 미만은 2016년 715명에서 2017년 1221명으로 70.8% 늘었다. 이들 가운데 10억원을 넘는 인원은 52명, 60억원 초과 구간에는 6명이 각각 포함됐다.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 증여가 급증하면서 편법ㆍ불법에 대한 우려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국세청은 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최근 부동산 증여가 급증함에 따라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편법증여 등 탈루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어, 이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고 있다“며 “특히 미성년자 등에 대한 변칙증여 등 세금 탈루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히 검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정부의 세금 정책이 강화되면서 부동산 시장에서 증여를 선호하는 현상은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오래된 세금 과표 등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들은 보완해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회피성 증여 증가로 부동산 시장이 전반적인 침체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면서 “강한 규제보다는 거래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정부 정책도 고려돼야 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양대근 기자/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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