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성연진 기자] 연간 180조원의 거대 산업이 있다. 금융위기와 글로벌 경기침체로 모든 산업이 뒷걸음질쳤던 2010~2012년에도 연평균 14.3%대의 나홀로 고성장을 지속해온 산업이다. 전망도 밝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이 산업에 향후 10년간 6억명의 새로운 고객들이 유입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도 세계 경제규모 톱10인 한국은 단 1%도 점유하지 못하고 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바로 명품(Luxury) 산업이다.

중국과 중동, 남미 등 신흥 국가들의 성장과 함께 세계 명품 산업의 급성장은 계속 이어지는 추세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의 ‘세계 명품 글로벌 파워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상위 75개 명품 기업의 2012년 회계연도(2012년 7월~2013년 6월) 총 매출은 무려 1718억달러에 달했다. 이들 75개 기업의 87%는 프랑스ㆍ이탈리아ㆍ스페인ㆍ스위스ㆍ영국ㆍ미국 6개국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이들이 2012년 세계 명품 매출의 90%를 차지했다.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명품산업이지만, 우리나라엔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대한민국은 연간 5조원 이상을 소비하는 명품 산업의 무시못할 시장으로 성장했지만, ‘공급자’로서의 역할은 극히 미미하다.

[슈퍼리치-럭셔리]180조 명품산업의 절대강자들-②세계 1위 보석 메이커, 리슈몽

명품산업을 단순히 허영을 사고 파는 산업으로만 보기에는 힘든 시대다. 명품 산업이 여느 산업에 비해 창조적이고, 부가가치도 높고, 효율적인 산업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명품산업을 통해 연 17만명의 고용이 창출되고 있고, 이탈리아의 빌리어네어의 55%는 명품 산업 종사자일 정도다.

세계의 명품 산업을 쥐고 있는 빅플레이어들을 살펴봤다. 독보적 1위는 프랑스에 거점을 둔 LVMH 그룹이며, 2위는 세계적 보석 메이커인 리슈몽, 3위는 구찌ㆍ보테가 베네타로 유명한 케어링그룹이다. 이밖에도 초고가 시계브랜드를 보유한 스와치 그룹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초고가 브랜드인 에르메스, 이탈리아 대표 럭셔리 브랜드인 프라다 그룹,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명품인 샤넬그룹이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그 중 2위 리슈몽을 살펴봤다.

◆명실상부 세계 1위 보석 메이커, 리슈몽(Richemont)

=세계 3대 명품회사로 스위스의 기반을 둔 리슈몽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작은 담배 가게에서 시작됐다. 리슈몽의 전신인 렘브란트 그룹을 일군 고(故) 앤톤 루퍼트 창업자는 집 창고에서 담배를 만드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해 몸집을 키웠다. 리슈몽은 그의 장남 요한 루퍼트가 1988년 명품 부문을 떼어내 세운 회사다.

루퍼트 일가의 투자 DNA는 탁월했다. 1960년대부터 명품 시장의 성장을 예견해 알프레드 던힐, 몽블랑, 까르띠에의 지분을 사들였고 명품 지주사인 리슈몽을 세운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최고급 명품 브랜드 인수에 나섰다.

1996년 바쉐론 콘스탄틴(시계), 1997년 파네라이(시계) 란셀(가방)을 비롯해 1999년에는 반 클리프 앤 아펠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까르띠에와 더불어 보석 부문에서도 라인업을 갖췄다.

2000년에는 예거 르쿨르트, 아 랑게 운트 죄네, IWC 등 최고급 시계 메이커들을 한꺼번에 인수했다.

라이벌 스와치와의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2012년에는 하이엔드 시계 부품사 VVSA를 사들이는 한편, 시계 케이스 회사에도 투자했다.

2010년에는 프리미엄 온라인 럭셔리 쇼핑몰인 ‘www.NET-A-PRTER.com’도 리슈몽에 편입시키며 유통 채널마저 갖췄다.

중국 시장의 성장이 급속도로 이뤄지자 홍콩의 ‘상하이 탕’ 을 리슈몽 계열사로 끌어들이는 등 발빠른 모습도 보이고 있다.

올해 3월 발표한 지난 1년간의 리슈몽 매출규모는 140억5400만 달러. 전년보다 5% 성장한 수치다.

이 가운데 9개 브랜드 포함된 시계 부문의 매출은 39억4300만 달러로, 까르띠에나 반 클리프 앤 아펠의 보석시계부문 매출은 포함돼있지 않다. 때문에 명품업계는 까르띠에와 반 클리프 앤 아펠 단 2개의 브랜드가 지난 한 해 벌어들인 매출 71억 8000만 달러를 감안하면, 리슈몽이 명실상부 ‘보석 시계’ 부문의 1위 메이커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포브스는 요한 루퍼트 회장 가족의 순자산을 79억 달러로 추정하면서, 남아공 최대 부자이자 아프리카 부자 순위 2위로 꼽았다. 그간의 성과에 스스로 상이라도 내리듯, 루퍼트 회장은 작년 9월부터 안식년에 들어갔다. 휴식에 들어간 그의 자리는 이브 안드레이 이스텔 회장이 대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