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흐름방향 · 속도 · 규칙등 파악 지난 1세기간 금융에 접목된 물리이론 소개 주식시장 인물들의 재미있는 얘기도 가득
“좀더 정교한 물리학 모형개발 · 적용” 역설
1955년, 아직 소년티를 벗지 않은 열 일곱살의 피셔 블랙은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다. 이 신입생은 지원 동기에 대해 자신은 노래를 좋아하는데 하버드에는 훌륭한 합창단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 답변만큼이나 괴짜였던 피셔 블랙은 여러 사회 과학 분야를 통합한 ‘사회관계’라는 학제 간 연구를 전공으로 선택한 뒤 자신을 대상으로 몇 가지 괴상한 실험을 했다. 이를테면 4시간 동안 깨어있다가 4시간 동안 잠을 자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수면패턴에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고 기록했다. 또 환각제를 포함해 약물을 복용하면서 그 효과를 추적하기도 했다. 대학 재학 내내 그는 한 가지 전공에 안주하지 못해 그의 수업표는 화학과 생물학, 물리학, 전기공학, 철학, 수학 등 두서 없이 짜여져 있었다. 인공지능과 심리학에 빠졌던 적도 있었다. 그의 박사과정 지도 교수는 “블랙의 능력과 독립성에 대한 갈망은 인정하지만 지적 노력에 대해서는 염려가 된다”며 “딜레탕티슴(직업적 태도로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 삼아 하는 성향)에 빠져들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고 하버드대 고등학위위원회에 보고했다.
결국 피셔 블랙은 응용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학교를 떠나 컨설팅 및 리서치 회사에서 컴퓨터를 만지다가 MIT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젊은 교수 마이런 숄스를 만난다. 그리고 둘은 주어진 어느 순간에 특정 주식과 그 주식의 옵션으로 위험이 전혀 없도록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한 헷징 전략, 옵션 가격 결정 공식을 세웠다. 이것이 블랙-숄스 옵션 가격 결정 모형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지금까지도 모든 파생 상품 모형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남아있다. 블랙과 숄스가 이 모형을 개발한 1970년대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서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공개 옵션 시장을 허가했고, 달러의 금태환을 기초로 한 국제적 고정환율 제도인 브레턴우즈 협정이 해체되고 외환 선물 거래를 하는 국제통화 시장이 출현함으로써 블랙-숄스 모형은 금융 시장을 지배하는 것으로서 득세하게 된다. 그리고 1983년 피셔 블랙이 학계를 떠나 골드만삭스의 주식 부문에서 일하게 됨으로서 물리학과 수학의 엘리트 학자들이 월스트리트를 움직이는 시대가 열린다. 피셔 블랙 이후로 월스트리트는 물리학자를 수백명씩 고용하기 시작했다. 직관적이거나 주관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객관적ㆍ계량적(수치) 분석기법을 중시하고, 큰 거래를 할 뿐만이 아니라 지적 혁신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새로운 종류의 투자 은행 직원을 ‘퀀트’(quant)라고 부른다.
제임스 오언 웨더롤의 ‘돈의 물리학’은 금융 시장을 분석한 물리학의 이론가들과 월스트리트를 움직인 이론 모형들을 소개한 책이다. 주식 금융 시장에서 돈이 움직이는 방향과 속도, 규칙을 규명하려 했던 쟁쟁한 수학ㆍ물리학자들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금융 자산 관리자는 워런 버핏도 아니고, 조지 소로스도 아니며, 빌 그로스도 아니며, 아마도 독자가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물리학자 제임스 사이먼스라고 시작하는 이 책은, 20세기초 프랑스로부터 시작해 제 2차 대전 당시의 정부 연구소들, ‘대부’와 프랭크 시나트라 시절의 라스베이거스 블랙잭 테이블을 거쳐, 태평양 연안의 이피(Yippie) 공동체, 오늘날의 월스트리트까지 이어진 금융과 물리학 사이의 은밀한 동거의 역사를 추적한다.
금융에서 물리학 모형을 이용한 이론과 전략의 탁월함은 저자가 책 첫 머리에서 인용한 제임스 사이먼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물리학자 제임스 사이먼스가 금융 전문가를 배제한 채 오로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만 직원으로 채용해 만든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의 대표 펀드 메달리온은 1988년부터 1998년까지 2478.6%라는 놀라운 수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 수익률은 1710.1%였다. 2007년 헤지펀드의 수익률은 평균 약 10%였으나 제임스 사이먼스의 메달리온 펀드 수익률은 73.7%였고, 베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 AIG가 무너져갔던 2008년엔 8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금융과 물리학의 밀월은 19세기 후반, 생계를 위해 낮에는 파리증권거래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물리학을 공부했던 루이 바슐리에 로부터 시작한다. 도박에 관심을 가졌던 그에게 증권시장에서의 주가의 흐름은 ‘술취한 주정뱅위의 방향없고 목적없이 비틀거리는 걸음’, 즉 무작위 행보였고, 후일 개념화된 물리학의 용어로는 분자의 브라운 운동과 같았다. 바슐리에가 무작위적인 원자의 움직임을 주가에 적용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주식의 수익률이 정규분포를 이룬다는 천체물리학자 모리 오즈번의 이론, 프랙탈 기하학을 주가 분석에 활용한 브누아 망델브로까지 이어진다. 또 블랙잭 게임에서 카드 카운팅 기법을 사용해 이길 확률을 높일 수 있음을 최초로 입증한 에드워드 소프에서 블랙-숄스 모형을 거쳐 주식시장의 폭락과 같은 극단적 충격을 새로운 변수로 한 이론인 디디에 소르네트의 ‘드래건 킹’까지 살펴본다.
이 책은 금융위기의 책임이 월스트리트의 수학과 물리학자에 있다는 비난에 대한 물리학자의 변호로서, 시장의 붕괴가 물리학을 적용한 복잡한 상품들때문이 아니라 물리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부와 기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향후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더욱 정교한 물리학적 모형들이 개발, 적용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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