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민사상 손해배상은 산업재해 사망자 유족의 생계를 보장하는데 부족하다. 산재유족 특별채용규정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다.” (원고 측 대리인)
“산업재해 유족이 고용세습 조항에 따라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것이다.” (피고 측 대리인)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는 단체협약 규정이 유효할까. 대법원은 업무상 재해로 숨진 이모 씨의 유가족이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 전원합의체 사건 공개변론을 17일 열었다. 공개변론에는 노동법 전문가인 권오성 성신여자대학교 교수가 원고 측으로, 이달휴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피고 측 참고인으로 나와 의견을 밝혔다.
양측의 대리인도 공방을 벌였다. 원고측 대리인 김상은 변호사는 "사용자는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과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로 인적, 물적 환경을 정비하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할 보호의무를 부담한다. 단체협약은 평화적인 교섭과 투쟁에 따른 협약자치의 결과물이다.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의 한계를 명백히 일탈하지 않는한 단체협약은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측 대리인 박상훈 변호사는 "부모가 노동조합원이라는 지위는 본인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얻어지는 일종의 사회적 신분이다. 해당 조항은 사회적 신분에 의해 청년 구직자를 차별하고 있으므로 헌법위반으로 무효로 봐야한다. 고용세습조항은 채용의 자유와 계약 불체결의 자유를 침해하고 공정성을 해치며 평등원칙에 위반돼 무효다. 산재유족 보호를 위해서는 금전보상 등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일단 채용 출발선에서는 기회균등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5년 기아차에 입사한 이씨는 기아차와 현대차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다. 이씨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 2년만인 2010년 숨졌다. 금형세척작업에서 벤젠이 다량 포함된 시너와 도료를 사용한 것이 발병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씨의 사망은 2013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고 근로복지공단은 1억8000여만원을 지급했다.
이씨 유족은 안전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금 2억3600만원 지급과 함께 이씨의 자녀를 채용하라며 소송을 냈다. ‘노동조합원이 업무상 재해로 인하여 사망할 경우 직계가족 1인을 특별채용’ 하도록 한 단체협약 규정에 따른 요구였다.
1심과 2심은 손해배상금 청구를 일부 받아들여 1억800만원을 배상하라면서도 자녀 채용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단체협약 규정은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현저히 제한하고, 취업기회 제공의 평등에 반하며, 산업재해 사망자 유족의 생계보장은 금전 지급으로 이뤄질 수 있으므로, 민법 103조(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위배 돼 무효”라고 판단했다.
공개변론에 앞서 대법원은 민주노총, 경총 등 14개 단체의 의견서를 받았다. 민주노총은 “회사의 사업 활동에 있는 위험 때문에 목숨을 잃은 직원에 대해 수용가능한 범위에서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으로 채용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경총은 이에 대해 “채용의 공정 내지 기회 균등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으로 고용세습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으며, 이는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청년들에게 심각한 허탈감을 심어줄 여지가 있다”라고 했다.
대법원은 공개변론 내용을 검토하고 3~6개월 내 최종 선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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