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하·워라인 어려운 직종 있어…회사 악용 가능성도”

“삶에 일 녹아드는 것 넘어 ‘일에도 삶 녹아든다’면 환영”

전문가 “자신의 일에 애정갖고 즐기는 게 워라하 첫걸음”

‘워라밸’·‘워라하’·‘워라인’ 비교
‘워라밸’·‘워라하’·‘워라인’ 비교

[헤럴드경제=윤호 기자] 수년간 직장인들에게 이상적인 모델로 각광받던 ‘워라밸(Work-Life Balance)’ 유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언택트 사회’ 확산으로 붕괴 조짐을 보이면서 삶과 일의 조화와 통합을 추구하는 ‘워라하(Work-Life Harmony)’와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청년층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양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31)씨는 “워라하를 핑계로 일과 삶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 지 우려된다. 결국 관리 직급에서 부하 직원에게 일을 시키는 데 유리한 근거로 작용할 것 같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마트에서 점원으로 근무하는 박모(28)씨도 “워라밸이 직종과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공감할 수 있던 개념인데 비해, 워라하·워라인은 사무직이나 일부 예체능 관련 직종에 적용되는 개념 같다”며 “우리는 하고 싶어도 실행하기 어렵다. 점심시간을 잘 활용하고 쉬는 시간에 음악을 듣는 정도일까”라고 털어놨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정모(37) 씨는 “워라인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코로나에 의해 앞당겨지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 더 슬프고, 약간의 반감이 든다”고 했다.

반면 퇴근 후의 삶에 일이 녹아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일에도 삶이 녹아든다’는 전제 하에 환영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서울 영등포구 소재 대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 신모(34)씨는 “회사에서도 워라하를 인정해준다면, ‘약속 있어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약속중에 이메일 체크하고 회신 가능합니다’라고 말하고 눈치보지 않고 퇴근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서모(42) 씨는 “워라밸에 길들여져 일과 후 떠오르는 업무 아이디어는 억지로 누르기도 했던 게 사실이었다. 워라하를 인정하면 스트레스 받지 않고 떠올릴 수 있겠다”며 “좋아하는 취미에서도 전문성을 기른다는 측면에서는 은퇴 후 인생 이모작을 꾸릴 때에도 유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모(40) 씨도 “핵심은 일과 후에 일의 침투뿐 아니라 일과 중에도 즐겁게 일하는 것이 보장되느냐에 달린 것 같다. 워라하가 적용된다면 일과 중에도 큰 시간이 들지 않는 개인 신변잡기 처리도 인정해 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전문가들은 워라하·워라인에서 소외되는 직종이 있는 것은 분명하며 회사의 악용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코로나19 시대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므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워라하·워라인 방식을 적용할 경우 일과 삶 양측에서 시너지를 내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워라인이 기본적으로 일에 대한 정체성을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사적인 즐거움도 추구시키는 것이라고 본다면 코로나19 시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억지로 일과 삶의 구분선만 없애면 회사가 이를 악용해 인건비를 줄이는 수단으로 쓰고, 개인 삶에도 부작용이 올 수 있다. 워라하·워라인은 개인 선택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워라하·워라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가져야 하며, 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중요하다”며 “예를 들어 프로게이머는 워라하·워라인 적용이 쉬운 직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임하는 태도가 경쟁에만 매몰되면 삶과 조화 자체가 힘들 것이다. 본인의 스트레스 관리와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한 셈”이라고 조언했다.

저서 ‘채용 트렌드 2020’을 통해 “워라밸은 가고 워라하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예측한 저자 윤영돈 커리어코치협회 부회장은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는 ‘일과 사생활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며, 일과 일 이외의 사생활은 보다 포괄적이고 거시적인 관계여야 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루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생계를 위해 지금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 실제로 즐기는 것이다. 이는 워라밸에서 워라하로 옮겨가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