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찾아온 잡스…애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급으로 스마트 시대 함께 열어
이건희 회장 갤럭시 시리즈로 맹추격하자 애플 특허 침해 소송으로 공격
애플-안드로이드 진영 혁신의 대표 주자…현재까지도 치열한 경쟁
[헤럴드경제 정순식 기자] 고(故)이건희 회장은 아버지였던 이병철 선대 회장과 함께 시대의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고(故)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와 대를 걸친 인연을 이어갔다. 아버지가 동업자였다면, 아들은 시대의 라이벌이었다.
아버지와 잡스의 만남은 오늘날 전 세계를 강타한 모바일 시대를 연 시발점이었다. 미국 언론의 한국 통신원으로 근무하며 삼성을 취재했던 제프리 케인 기자는 최근 출간한 자신의 책 ‘삼성의 부상’(Samsung Rising)에서 “지난 1983년 11월 당시 삼성의 이병철 회장과 스티브 잡스가 만나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렸다”고 회고했다.
당시 73세였던 이 전 회장은 수원 공장으로 찾아온 28세의 잡스를 만났다. 잡스는 태블릿 컴퓨터 제작을 구상하며 메모리칩과 디스플레이 공급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한다.
당시 삼성은 TV와 전자레인지 등의 가전을 할인가로 판매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반도체 사업 진출을 통해 메모리칩도 막 생산하려던 시기였다. 잡스는 과연 삼성이 자신이 원하는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사업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결국 삼성은 애플의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의 주요 공급원이 되며 본격적인 스마트 시대를 개막하게 된 주역이 됐다.
이 동업자 관계는 아들 이건희 회장 시대로 접어들며 치열한 라이벌 관계로 변모한다. 이 회장과 잡스 모두 혁신의 아이콘이었지만, 세계 시장의 1위 자리를 두고 양보할 수 없는 경쟁을 이어갔다. 두 사람은 확연히 다른 경영 색깔을 내세우며 양보할 수 없는 경쟁을 이어갔다.
잡스 전 CEO가 ‘소프트웨어 파워’라면 이 회장은 ‘하드웨어 파워’였다. 삼성이 스마트폰을 준비하던 2007년 1월 애플은 ‘맥월드 2007’을 통해 아이폰이란 IT 혁신의 아이콘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시기 삼성은 자사의 스마트폰 출시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아이폰의 핵심 부품 중 대다수를 출하하며 하드웨어 기술을 쌓았다. 앞서 아이팟 나노에 들어갈 부품을 애플에만 단독으로 납품하는 등 물밑에서 삼성은 애플의 돈독한 협력사였다.
삼성과 애플의 사이는 삼성이 갤럭시 시리즈를 출시하면서부터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 회장의 주도 하에 삼성전자는 주력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구글 안드로이드로 전환하고 2010년 5월 첫 스마트폰인 ’갤럭시 S‘를 출시했다. 이후 갤럭시S는 7개월 만에 전세계에서 1000만대가 팔려 삼성전자의 첫 ‘텐밀리언셀러 스마트폰’의 자리에 올랐다. 갤럭시 시리즈로 삼성전자가 맹렬히 추격해오자 긴장한 애플은 무차별적인 특허소송으로 삼성을 공격했다. 이에 삼성은 애플을 상대로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가지고 있는 모바일 관련 특허를 빌미로 역제소를 했다.
이 회장은 2011년 4월 출근 경영을 시작하며 “애플 뿐만 아니라 전세계 우리와 관계없는 전자 회사가 아닌 곳까지도 삼성에 대한 견제가 커지고 있다. 못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인 것 같다”고 말하며 변화와 혁신을 독려했다. 애플의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기술정책을 꼬집으며 삼성전자는 2012년 총 4억대의 휴대폰을 팔아 점유율 25.2%로 세계 정상에 등극하기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두 혁신가가 이끄는 기업들의 지속적인 경쟁이 스마트 기기의 기술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평가한다. 모방이 창조로, 창조가 모방으로 순환하면서 스마트 기기를 더 혁신시키고 발전시켰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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