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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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진범논란'을 빚은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에 대해 재수사 과정에서 범행을 자백한 이춘재(56·사진)가 사건 재심 재판에서 1980년대 화성과 청주지역에서 벌어진 14건의 연쇄살인사건 일체를 자신이 저질렀다며 "내가 진범"이라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 심리로 2일 열린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증인으로 출석한 이춘재는 첫 사건 발생 34년 만에 교도관에 이끌려 일반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록색 수의에 흰 명찰을 단 그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얇게 찢어진 날카로운 눈매는 30여 년 전 몽타주 속 사진 그대로였다. 다만 오랜 수감 생활 탓인지 얼굴 곳곳에는 주름이 깊게 패어있었고, 짧은 스포츠머리에 군데군데 흰머리가 성성했다.

이춘재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증인선서를 한 뒤 사건 당시에 대한 진술을 이어갔다.

그는 경찰이 교도소로 찾아와 DNA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추궁하자 1980년대 화성과 청주에서 저지른 14건의 살인 범행에 대해 모두 털어놨다고 했다. 이어 사건을 자백한 이후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고 덧붙였다.

14건에 이르는 살인과 30여 건에 달하는 성범죄를 모두 스스로 저질렀다고 진술하면서도 그의 목소리는 큰 감정 변화가 없는 듯 한결 같았다.

이춘재는 지난해 경찰의 재수사가 시작된 후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재수사 과정에서 아들과 어머니 등 가족이 생각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모든 것이 다 스치듯이 지나갔다"면서 "사건이 세상이 알려진 뒤에 남은 가족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몰랐다"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왜 그런 사건을 저지르게 됐느냐는 물음에는 "지금 생각해도 당시에 왜 그런 생활을 했는지 정확하게 답을 못하겠다"며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해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사유인지는 모르고 당시 상황에 맞춰 (살인을)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사건 피해자들에게는 "저의 사건에 관계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며 "반성하고 있고, 그런 마음에서 자백했다. 하루 속히 마음의 안정을 찾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전했다.

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재심 청구인 윤성여 씨가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
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재심 청구인 윤성여 씨가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 씨는 피고인석에 앉아 증인석에서 진술하는 이춘재의 모습을 내내 지켜봤다. 이춘재는 피고 측 변호인의 질문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에도 한 번도 피고 측으로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정면만 응시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중학생) 양이 성폭행 피해를 본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하면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2심과 3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변호인 양측은 모두 이춘재를 증인으로 신청했으며,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춘재가 법정에 나와 일반에 공개된 것은 그가 자백한 연쇄살인 1차 사건이 발생한 1986년 9월로부터 34년 만이며, '진범논란'을 빚은 8차 사건이 발생한 1988년 9월로부터 32년 만이다.

이날 재판은 이춘재의 증언에 국민의 관심이 높은 점을 고려해 88석 규모(사회적 거리두기로 44석 운용)의 본 법정 뿐만 아니라 별도의 중계법정 1곳에서 동시에 공개됐다. 앞서 재판부가 이춘재는 증인의 지위에 불과하다며 촬영을 불허해 이날 사진·영상 촬영은 이뤄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