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과세정보 들여다볼 부동산거래분석원, 내년 초 출범 목표
이달 초 관련 법률 발의…연내 국회 통과 힘들듯
정부 “대응반 인력으로는 시장 감시 어려워”
지나친 감시로 실거래 위축·재산권 침해 우려 커
거대한 조직으로 구성되면 행정력 낭비 예상
[헤럴드경제=민상식 기자] 집값으로 들끓던 민심이 전셋값 상승으로 폭발한 가운데 정부의 부동산 시장 감시 기능 강화가 부동산 시장의 질서를 재편하는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정부와 여당은 시장 교란 행위를 저지르면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는 투기 세력을 가려내 엄벌하기 위한 상시 부동산시장 감시기구인 ‘부동산거래분석원(이하 분석원)’을 추진 중이다. 기존 운영 중인 국토부 산하 임시조직인 불법행위 대응반(이하 대응반)으로는 시장교란 행위 감시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지시한 이후 내년 출범을 목표로 입법 절차가 진행 중이다. 분석원은 국회 논의를 거치면 100여명의 거대 조직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금융·과세정보까지 갖는 분석원은 벌써부터 ‘빅 브러더’(Big brother·정보를 독점한 거대 권력자) 우려를 낳고 있다. 시장에서는 지나친 감시에 따른 실거래 위축과 개인 정보·재산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하지만 부동산시장 교란 행위에 대응하는 정부 조직이 상존한 가운데 새 조직이 출범할 경우 ‘옥상옥(屋上屋) 구조’로 행정력 낭비도 예상된다. 조직이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질 경우 시장 침체기에는 역할이 애매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초 출범 목표…금융·과세정보 조회 가능해=부동산 시장 이상 거래·불법행위 대응을 총괄하는 분석원은 개인금융·과세정보를 조회할 수 있게 법적 근거를 마련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국토교통부와 협의를 통해 부동산거래분석원의 구성과 기능 등을 담은 ‘부동산거래 및 부동산서비스산업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지난 6일 대표 발의했다.
부동산거래분석원은 국토부 소속 기관으로, 부동산 이상 거래나 불법행위를 분석·감시하고 수사하기 위해 국세청, 금융감독원, 경찰 등 관계기관으로부터 금융·과세·범죄 정보 등을 받아볼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다만, 이들 정보는 필요 최소한도로 요청할 수 있고 제공된 정보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관리하도록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집값 담합이나 허위정보 유포, 부당광고, 미공개 개발정보 이용행위 등 각종 부동산 시장 교란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 시 처벌하는 내용도 담았다.
특히 집값 담합과 관련, 안내문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이용해 집값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허위정보 유포는 투자자를 유인할 목적으로 지역의 거짓 개발정보나 미확정 개발계획 등을 뿌리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한 수요·공급 현황 정보 등을 불특정 다수에 제공하는 행위다.
이번에 발의된 입법안은 올해 안에 국회 문턱을 넘기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야당이 개인정보와 사생활 침해 우려로 반대가 거세고, 전세난에 따른 민심 악화로 여당 안에서도 감시기구 신설에 대해 부정적 기류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정은 당초 분석원의 출범 시기를 국토부 산하 불법행위 대응반(이하 대응반)의 활동 종료 시점인 내년 2월 중순으로 했다. 현재 발의된 입법안이 통과하더라도 시행령 개정 등 후속조치에 수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여 내년 상반기 내 출범도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시장교란 행위 도 넘었다…“대응반 인력으로는 부족해”=정부는 현재 운영 중인 대응반을 분석원으로 확대 개편할 계획이다. 여러 부처에서 소수의 인력이 파견된 임시조직인 대응반으로는 현재의 심각한 시장교란 행위를 제대로 감시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말 발표된 정부 부동산 실거래 합동단속 결과에 따르면 부동산 시장의 탈·불법이 도를 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응반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9억원 이상 고가주택 거래 가운데 1700여건의 이상 거래를 조사했는데, 탈세(555건)·대출위반(37건)·명의신탁(8건) 등 600건(35.2%)에서 불법행위 정황이 포착됐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응반의 단속 결과 발표 직후 “이러한 시장 교란행위 대응이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되며 시스템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현재의 불법행위 대응반 인력으로는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불법행위 등에 대응하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운영 중인 불법행위 대응반은 국토부, 국세청, 검찰, 경찰, 금융감독원 등 7개 기관의 13명으로 구성됐다. 대응반은 자금조달계획서 등을 바탕으로 9억원 이상의 고가 주택 거래나 토지거래허가구역 등 이상 과열 지역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英·美 감시기구 있어” vs “해외 전례없어” 의견분분=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감시하는 전담 기구의 해외 사례로 미국과 영국의 경우를 제시했다. 국토부는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질의에 “영국의 경우 경쟁시장국(CMA) 부동산소비자보호전담팀(NTSEAT)에서 중개수수료 담합 등 업종 내 불법행위를 단속한다”며 “미국은 캘리포니아주 부동산국에서 부동산서비스업 내 준수사항에 대한 모니터링과 피해구제 업무 등을 수행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부동산국, 영국 CMA는 소비자 보호에 중점을 두는 등 실상은 다르다는 지적이다.
캘리포니아 부동산국은 부동산중개인 면허 발급 등 부동산서비스업에 대한 규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영국 CMA는 기업의 공정거래를 감독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인데, 다양한 소비자 보호 업무 중 하나로 중개 수수료 담합 문제 등을 다룬다. 이들 기관이 민간 거래 등 부동산 시장 전반에 대한 감시·감독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긴 어렵다는 게 입법조사처의 분석이다.
주요 사례로 언급되는 싱가포르 주택관리청도 주택 공급·거래 업무를 담당하지만, 주택의 80% 이상이 국유화돼 민간 거래를 감독하진 않는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싱가포르 주택관리청도 부동산 시장 감독을 전담하는 경우는 아니다”면서 “해외에서 부동산을 전담하는 감독 기구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어 그 영향이 어떨지 예측이 힘들다”고 말했다.
▶100명 안팎 인력 전망, 정보 독점하는 ‘빅브라더’ 될까=‘금융정보분석원(FIU)’을 모델로 하는 분석원은 앞으로 금감원·국세청·검찰·경찰 등으로부터 인력을 파견받아 100명 안팎이 될 전망이다. FIU는 자금세탁, 외환거래를 통한 탈세를 잡아내는 역할을 하는 기구로 정원은 약 80명 수준이다.
홍 부총리는 지난 9월 “분석원의 기능·권한 등을 설계하면서 정부 외부에 설립하는 독립된 감독기구가 아닌, 정부 내 설치하는 정부 조직으로서 FIU, 자본시장조사단 사례를 적극적으로 참고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분석원에 금융·과세 정보 등을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은행에 대출 계좌 정보를 요구할 수 있고 국세청 세금 납부 내역 조회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금융거래 내역 등 개인정보를 상시 열람·취득할 경우 등 자칫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감시기구 신설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무엇을 이상거래로 볼 수 있는 지에 대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조직을 만들고 모든 거래를 다 들여다보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며 “정상적인 거래 또한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과도하게 개인의 기본권과 재산권을 침해할 가능성은 높다는 지적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금융·과세정보 조회는 위법 행위 조사에 한해서만 허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복 업무 두고 비효율만 초래할 것”=전문가들은 이미 과세 부분은 국세청, 대출은 금감원 등에서 담당하는 등 다양한 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조직이 추가될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여러 기관이 중복된 일을 맡게 되면 업무 분담을 두고 충돌이 발생하는 등 비효율만 초래할 수 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검찰과 국세청, 금감원 등 다양한 기구가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국민의 모든 경제 행위를 감시하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 경우 분석원이 맡게될 기능 등을 두고 의문도 제기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가격 급등에 따라 투기 행태가 벌어지는 단기적 현상에 감시기구를 신설해 통제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향후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 투기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인데, 감시기구의 많은 인원들이 기관의 존속을 위해 쓸 데 없는 행위만 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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