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대설경보가 내려진 경북 울릉군 저동항 언덕배기 한 마을 가정집에 까치밥으로 남겨둔 홍시에 까지 한마리가 접근하고 있다.
16일 대설경보가 내려진 경북 울릉군 저동항 언덕배기 한 마을 가정집에 까치밥으로 남겨둔 홍시에 까지 한마리가 접근하고 있다.

[헤럴드 대구경북=김성권 기자]추위가 절정에 달한 16일,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울릉도 저동항 언덕배기 마을 한 주택가에 추운 겨울 굶주릴 동물들을 위해 홍시 몇 개를 따지 않고 까지밥으로 남겨 둔 주인장의 아름다운 마음이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마음이 넉넉해온다.

찬 서리 이고 나무 끝에 매달려 겨우내 허기진 날짐승들에게 자신의 몸을 고스란히 내주고 있는 까치밥은 다름 아닌 바로 홍시 주인일 것이다.

까치밥은 인정과 사랑이다. 꼭 까치가 먹어야 해서 까치밥이라고 한건 아니다. 까마귀도 좋고, 비둘기가 먹는다고 안 될 것도 없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남겨 둔 감 하나로 허기를 채울 수 있다면 더 할 나위가 없다. 아마도 까치가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면서도 길조라 여겨 그 이름을 붙인 듯싶다.

우리 선조들은 열매를 수확한 후 나뭇가지의 감들을 ‘까치밥’으로 따지 않은 채 남겨 두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의 소중한 생명을 위해 베풀고 배려하는 마음에서였다. 다가올 차가운 겨울 하늘 속 공허를 따뜻하게 채워준다.

헤럴드 대구경북 김성권 기자
헤럴드 대구경북 김성권 기자

공존과 공생이란 묘리의 실천이기도 하다. 까치밥을 남겨두는 것이나, 우리 조상들이 콩을 심을 때 한 구덩이에 세알을 심은 이유가 하나는 땅속의 벌레 몫이고, 또 하나는 하늘을 나는 새, 나머지 하나만이 자신의 몫이라고 여겨서라니 이보다 더한 공생의 실천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듯 남김은 우리 전통의 미학이다. 만연한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생태 파괴, 무한경쟁으로 인한 비인간화를 치유할 수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도 남김의 소중함을 '유재(留齋)'란 현판에 남겼다. '재주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로 돌아가게 하고,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 라는 글과 함께.

요즘은 어떤가. 날로 각박해져 숨 쉴 틈조차 없을 지경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잔혹한 범죄가 발생하고, 정치판은 국민의 안위도 없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해 탐욕을 채우려 한다. 남김은 어리석은 자들의 교만으로, 인정과 사랑을 말하면 약자들의 변명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매서운 겨울이다. 공존과 공생의 길은 멀기만 하고 까치밥과 '유재(留齋)'의 깊은 뜻이 더 절실해지는 요즘이다.겨울이 되면 춥고 배고픈 이웃들을 위한 온정이 쏟아진다. 재물을 다하지 않고 베푸니 남김의 미학이 아닐 수 없지만 때를 가리지 않고 그렇게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않을까?

추운 겨울 굶주릴 동물들을 위해 홍시 몇 개를 따지 않고 남겨 둔 고즈넉한 섬마을 풍경이 마냥 정겹다.

잘 익은 홍시를 맛보며 ‘까치밥’에 담겨진 의미를 되새겨보자. 사람답게 사는 세상,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세상은 먼 데 있는 곳이 아니다.

겨울의 한복판, 또 한 해가 이렇게 저문다. 코로나로 어렵고 힘든 기억들은 흐르는 동해바다로 띄어 보내자. 살맛나는 내일을 위해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매자. 세월아. 나의 청춘아. 사랑하는 모든 사람아.

ksg@heraldcorp.com

(본 기사는 헤럴드경제로부터 제공받은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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