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시민단체 진정 사건에 의견 표명

“색깔따른 性구분, 1980년대부터 자리잡아”

“고정관념 내면화→미래 영향→성차별 심화”

피진정 업체들, 성별 표기 삭제 등 개선 계획

[아이클릭아트]
[아이클릭아트]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분홍색은 여아용, 파란색은 남아용으로 성별에 따라 색깔을 구분한 영유아 상품들은 성역할 고정 관념을 학습시키는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영유아 제품 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제기한 진정 사건과 관련해 “성별에 따라 색깔을 구분하는 방식을 탈피해 성 중립적인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는 상품에 색깔에 대한 성별 구분이 20세기 중반 이후 다품종 소량 생산 체계로 전환되며 생기기 시작했고, 1980년대 이후에는 본격적인 판매 전략으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도 소꿉놀이, 인형 등은 여성성을 상징하는 분홍색 계열로, 자동차나 공구 세트 같은 기계류는 남성성을 상징하는 파란색 계열로 제작되고 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색깔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에 따라 여성은 연약하고 소극적이고, 남성은 강인하고 진취적이라는 성역할 고정 관념을 배우게 되고,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차별적 성 인식을 무의식 중에 갖게 된다고 인권위는 지적했다.

또한 사회적·문화적 관행에 따라 구성된 ‘여성다움’, ‘남성다움’이라는 성역할 고정 관념이 내면화되면서 가치관, 직업 선택까지 영향을 주고, 성차별이 더욱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판단했다. 영유아기는 성역할 고정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쉬운 만큼 이 같은 가능성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인권위는 “최근 해외 각국에서도 성별을 구분하는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비판과 지속적인 개선 요구로 영유아 상품의 성별 구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아마존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은 2015년 5월부터 아동용 완구의 성별 구분을 없앴으며, 미국·영국 완구 매장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피진정 영유아업체들은 성별 표기·성차별적 문구를 삭제하거나 향후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업체는 진정 제기 직후에는 “판매·유통상 편의를 위해 성별을 표기했고 색깔에 따라 성별을 구분하는 사회·문화적 관행에 익숙한 소비자의 선호를 반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인권위는 이번 진정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상품의 색깔을 성별 구분 기준으로 삼는 문제가 있지만, 이로 인해 소비자가 해당 상품을 구매·이용하는 데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서다. 인권위법에 따르면 인권위가 진정 사건을 평등권 침해의 차별 행위로 조사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피해 사실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