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시대의 얼굴'전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 컬렉션 78점 소개

역사적 인물이 품은 스토리 '흥미진진'

호크니·카츠·프로이드 등 유명 작가 작업도 눈길

초상화에는 코드가 숨어있다. '처녀 여왕'으로 불린 엘리자베스1세 영국여왕은 자신의 순수함을 통치의 권능으로 활용했다. 불사조 모양의 브로치는 처녀성과 재생을, 진주는 순수를 상징한다. 손에 든 붉은 장미는 튜더 왕가를 뜻한다. 런던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품.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에는 코드가 숨어있다. '처녀 여왕'으로 불린 엘리자베스1세 영국여왕은 자신의 순수함을 통치의 권능으로 활용했다. 불사조 모양의 브로치는 처녀성과 재생을, 진주는 순수를 상징한다. 손에 든 붉은 장미는 튜더 왕가를 뜻한다. 런던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품.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셀피(Selfie)의 시대다. 우리는 특정 순간을 사진으로 박제한다. '인증샷'엔 수많은 정보가 숨어있다. 어깨 너머로 보이는 아주 작은 실마리 만으로도 누구와 함께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순간의 날씨와 분위기, 기분까지도 읽어낸다.

셀피의 조상격인 초상화도 마찬가지다. 당시의 트렌드와 주인공의 지위, 성격, 취향은 물론 본인이 강조하고 싶어하는 부분까지 온갖 메시지들이 녹아있다.

엘리자베스 1세 영국여왕(1533-1603)의 초상을 한 번 살펴보자. 영국서도 가장 능력있는 군주로 꼽히는 그는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와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나, 25세에 왕위를 계승했다. 결혼 해야했지만 정적을 키울수 있다는 이유로 '처녀 여왕'으로 남는다. 그의 초상화에는 이같은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처녀성과 재생을 상징하는 불사조 모양의 브로치를 가슴에 달고, 불변과 순수를 뜻하는 검은색과 흰색을 주로 사용했다. 순수를 상징하는 진주로 의복을 장식하고, 손에는 튜더 왕가를 뜻하는 붉은 장미를 들었다. 왕조를 계승해 계속 지켜나갈 것이라는 확신이다.

허레이쇼 넬슨과 에마 해밀턴 초상. 세기의 사랑이자 불륜 커플이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허레이쇼 넬슨과 에마 해밀턴 초상. 세기의 사랑이자 불륜 커플이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이처럼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펼쳐지는 초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라는 제목의 전시엔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의 소장품 78점이 출품됐다. 양 기관의 협력으로 진행되는 전시는 500여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세계 역사와 문화에서 획을 그은 인물들만을 선별했다. '명성', '권력', '사랑과 상실', '혁신', '정체성과 자화상'이라는 다섯가지 키워드로 초상화가 갖는 다양한 의미를 살펴본다.

전시에서는 세기의 사랑 혹은 불륜 커플인 허레이쇼 넬슨(1758-1805)과 에마 해밀턴(1765-1815)의 초상은 '사랑과 상실' 섹션에 나란히 걸렸다. '넬슨 제독'으로 더 익숙한 그는 전투중 부상을 회복하기 위해 머물렀던 나폴리에서 에마 헤밀턴을 만난다. 나폴리 공국 영국 외교관인 윌리엄 헤밀턴의 부인인 에마는 무용수로도 활동했다. 넬슨과 사랑에 빠졌으나, 넬슨이 이혼하지 못해 끝내 정부로 남았다.

초상화 속 넬슨은 전쟁 훈장을 자랑스럽게 달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한다. 시선이 끝나는 곳에 에마 헤밀턴의 초상이 있다. 에마를 뮤즈로 여겼던 조지 롬니의 손에 탄생한 초상화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에마의 면모를 한껏 강조했다.

〈폭풍의 언덕〉과 〈제인에어〉로 유명한 앤, 에밀리, 샬롯 브론테 자매 초상. 유일한 남자형제였던 브란웰이 그렸다. 자매들 뒤로 어렴풋한 인영은 브란웰 자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뒤에 물감을 덧칠해 자매들의 모습만 남겼다.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폭풍의 언덕〉과 〈제인에어〉로 유명한 앤, 에밀리, 샬롯 브론테 자매 초상. 유일한 남자형제였던 브란웰이 그렸다. 자매들 뒤로 어렴풋한 인영은 브란웰 자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뒤에 물감을 덧칠해 자매들의 모습만 남겼다.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폭풍의 언덕'과 '제인에어'로 유명한 앤(1820-1849), 에밀리(1818-1848), 샬롯 브론테(1816-1855) 자매의 단체 초상도 흥미롭다. 유일한 남자형제였던 브란웰이 그린 그림으로,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샬롯의 남편이던 니컬스 목사와 재혼한 부인의 집 찬장에서 접힌채로 발견됐다. 전시에 나온 그림도 접힌 자국이 선명하다. 자매들 뒤로 어렴풋한 인영이 보이는데, 브란웰 자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상화 주인공들이 하나의 관람 포인트라면 또다른 재미 요소는 초상화를 그린 작가들이다. 루시언 프로이드는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주의 양식으로 자화상을 그렸고, 데이비드 호크니도 친구이자 뉴욕출신 큐레이터인 찰리 샤이프스와 함께한 2인 초상을 선보인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인 애나 윈터는 뉴요커의 모습을 핵심만 포착해 그려내는 알렉스 카츠가 그렸다. 변화무쌍한 건축으로 유명한 자하 하디드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디지털 초상으로 구현했다. 윤곽선은 그대로이나 얼굴색과 배경이 끊임없이 바뀌며 역동적인 '곡선의 건축'을 떠올리게 한다.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한 시린 네샤트 감독은 인권운동가이자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인 말라라 유사프자이를 촬영하고 그의 얼굴에 여전사와도 같은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시를 써 넣었다. 전시는 8월 15일까지.

vicky@heraldcorp.com

알렉스 카츠가 그린 애나 윈터.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알렉스 카츠가 그린 애나 윈터.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린 자신과 찰리의 초상.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린 자신과 찰리의 초상.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