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명우’ 역 맡은 윤도현

故 이영훈 작곡가 투병 중에 썼던 뮤지컬

“꼭 출연하라” 유언 같은 당부가 출연 계기

연습시작 전 술·담배 끊고 뮤지컬 창법 몰두

객석 채운 중장년 관객과 가슴 벅찬 공감대

아무리 ‘국민’ 수사가 흔해졌대도, 어떤 사람의 이름 앞에선 거부감이 없다. ‘국민 로커’ 윤도현이 그렇다. 10명 중 9명은 윤도현을 YB로 기억해도, 가수 데뷔 1년차에 뮤지컬 무대에 오른 ‘나름의 역사’가 있다. 1995년 환경문제를 다룬 뮤지컬 ‘개똥이’가 첫 주연작. 가요계 선배 김민기가 연기경험도 없는 윤도현을 학전 무대에 세웠다. 이후로 몇 차례 뮤지컬을 거치며, 은퇴 아닌 은퇴를 선언했다. 2016년 ‘헤드윅’이 마지막이었다.

“스스로 뮤지컬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 질문하게 되더라고요. 음악과 예능을 병행하다 보니 뮤지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고, 음악에만 집중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윤도현이 다시 돌아왔다. ‘광화문연가’에서 죽음을 앞두고 시간을 관장하는 신 월하와 함께 1980~1990년대의 기억 속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중년 작곡가 명우 역을 맡았다. 뮤지컬 재도전은 5년 만. “피드백이 냉정한” 열일곱 살 딸에게 “연기도 잘 한다”는 칭찬도 들었다.

‘광화문연가’는 윤도현에겐 특히나 각별하다. 무대의 또 다른 주인공, 명곡을 쓴 고(故) 이영훈 작곡가와의 인연은 그를 다시 무대로 이끌었다.

“이영훈 형님과는 두 번 정도 녹음을 같이 했어요.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투병 중이실 때 문병을 갔어요.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아졌을 때인데도 침대에서 곡을 쓰고 계셨어요. 뮤지컬을 만들겠다며 저에게 꼭 해야 한다고 하셨죠.” 유언처럼 남겨진 말은 윤도현이 이 작품을 하게 된 계기였다. 그는 “하늘에서 보고 되게 좋아하실 것 같다”며 “그 노래들이 남아서 이렇게 좋은 기억으로 모든 사람에게 들려지니까 후배로서도 너무나 기쁘다”고 했다.

‘광화문연가’는 같은 창작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만큼 이해의 폭이 컸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창작자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사람들은 작곡가나 창작자들의 결과물만 알지,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고 창작하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음악을 만들거나 창작할 때는 없던 걸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집중이 필요하고, 주변 상황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홀해질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해지기도 하고요.”

그 모습이 윤도현과도 판박이다. 그는 “어떨 땐 내 삶과 너무도 닮아 내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곡을 만들기 위해 온갖 상상력, 경험한 것, 경험하지 않은 것조차도 동원해요. 어떤 땐 책이나 영화를 떠올리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없는 얘기를 만들어 내기도 해요. 고통스럽지만 완성 후의 희열 때문에 힘든 작업을 반복하는 거예요. 저도 겪어봐서 이해도가 높고, 감정을 더 이입할 수 있었어요. ”

극중 명우 역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만들기 위해 풋사랑을 동원하고, 상상의 나래를 편다. 스스로가 만든 첫사랑을 창작의 세계로 수혈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 ‘광화문연가’의 골자다. 그 과정에서 들리는 이영훈의 명곡들은 관객의 가슴에 저마다 다른 감정을 새긴다. ‘광화문연가’의 가장 큰 힘은 ‘음악’이다. 윤도현은 ‘광화문연가’를 준비하며 뮤지컬 무대에 어울리는 창법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예전에 뮤지컬을 할 때 ‘콘서트를 보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절제하고 섬세한 감정을 보여주려 힘을 뺐어요.” 연습 시작 전부턴 술과 담배도 끊었다. “섬세함을 살리기 위해서는 목 상태가 좋아야 하거든요. YB를 할 때는 러프한 맛에 록을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목소리 상태로는 안 될 것 같았어요.” 노력은 무대에서 증명됐다. 그의 목소리는 어떤 배우의 것보다 드라마가 탄탄하다. 관객의 몰입도가 높아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인생을 관조하는” 작품이자, 한 시대를 함께 한 음악이 흐르는 만큼 객석엔 유달리 중장년 관객층이 많다. 윤도현은 “우리 연령대가 공감대를 형성하기 좋은 이야기”라고 했다.

“중장년이 되면 스스로도 모르게 죽음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까 고민하는 나이거든요. 이 생과의 작별을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하기도 하고요. 행복하게 작별하고 싶어요. ‘유쾌하게 잘 살다 갑니다’. 이런 마음으로요. 그러려면 더 잘 살아야겠다 싶어요.”

무심결에 찾아오는 메시지에 음악이 실리면 전달력은 더 커진다. 그는 “명곡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각박하고 힘들 때, 일상에 답답함을 느낄 때 음악을 들으면서 추억여행을 하거나 잊었던 기억을 되살리기도 해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잃으면 각박해지고, 타인을 향한 혐오감이 싹트게 되는 것 같아요. 음악을 통해 잠시나마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다시 힘든 삶을 살아갈 에너지가 충전되잖아요. ‘광화문연가’가 사랑을 채워주는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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