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7개월만의 재개관...공간·전시 탈바꿈
글로벌 미술관 도약...‘문화유산’ 가치 보존
열린 미술관 지향...문턱 낮춰 대중화 지향
‘인간’ 주제 기념전...호암도 40년來 새단장
‘리움의 상징’인 로툰다(원형 홀)를 떠받치고 있는 검은 기둥 너머로 초대형 미디어 월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가로 11m, 세로 3m(462인치)의 거대한 화면에선 미국 출신 영상미디어 작가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작품이 상영됐다. 꽃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담은 ‘화환’이 나오자 리움의 로비는 이내 실내정원으로 모습을 바꿨고, ‘태고의, 2’가 등장하자 미디어아트는 관람객을 공기방울이 피어나는 ‘태초의 바다’로 데려갔다.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국내 최고의 사립미술관 리움이 지난 8일, 1년 7개월 만에 문을 열었다.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움은 ‘국정농단’ 사태 여파로 2017년 3월 홍라희 관장이 물러나면서 소장품 상설전만 선보이다, 코로나19가 당도한 지난해 2월 휴관에 들어갔다. 다시 돌아온 지금은 ‘리움 2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대적인 변화가 묻어난다.
재개관한 리움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미술관 로고인 MI(Museum Identity)부터 바꿨다. ‘삼성가(家) 이씨’의 뮤지엄이라는 의미의 ‘리움(Leeum)’ 글자 대신 다섯 개의 동심원이 미술관의 입구에 걸렸다. “지구의 공전 궤도에서 착안”한 MI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새로운 MI를 올려다보며 들어서는 미술관의 첫인상은 로비가 결정한다. 리움 관계자는 “로비는 한국의 고미술과 전 세계의 근현대미술을 이어주는 공간”이라며 “건축의 본질적 의도를 살리는 정돈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로툰다에서 사방으로 향하는 하얀 빛에 어우러진 검은색의 조화로움이 곳곳에 배치됐다. 흑백의 인테리어는 포근한 안정감을 준다. 기둥 하나, 기둥 아래 놓인 조약돌 모양의 벤치, 사물함까지 검은색으로 맞췄다. 로비에선 현대미술 작품 두 점을 만날 수 있다. 검은 리셉션 데스크엔 ‘숯의 화가’ 이배의 ‘불로부터’가 전시됐고, 로툰다 천장엔 김수자의 ‘호흡’이 설치됐다. 로툰다의 창과 천장에 설치된 특수필름이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미술관의 낯빛을 보여준다. 두 점의 설치 작품과 미디어아트, 리움 스토어 등 달라진 로비는 리움의 세련된 인상을 완성한다.
다시 문을 연 리움의 방향성은 두 가지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리움을 글로벌 미술관으로 성장케 하고 한국의 작가들을 세계 무대에게 알리는 것에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에 각별히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미술관으로의 도약’은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포부이며, ‘문화유산의 보존’은 선대 회장의 유지라는 것이 김 부관장의 설명이다. 두 가지 방향성을 바탕으로 리움은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꾀하고 미래로 도약한다.
‘공간의 변화’로 리움의 얼굴이었다면, ‘전시의 변화’는 리움의 본질이다. 리움은 획기적 전시를 통해 ‘달라질 리움’의 서막을 알렸다. 한국 고미술과 현대미술 상설전은 7년 만에 전면 개편했고, 기획전은 2017년 이후 4년여 만에 복귀했다.
우선 규모로 압도한다. 화려하고 방대하다. 두 개의 상설전과 기획전을 통해 보여진 작품의 수는 무려 360여점. ‘한국 고미술 상설전’에선 국보 6점, 보물 4점을 포함한 총 160점, 현대미술 상설전에선 76점, 재개관 기획전에선 국내외 51명의 작가와 130여점을 선보인다. 관계자는 “리움이 방대한 전시를 선보인 것은 역대 세 번이었다”며 “2004년 개관전, 2014년 10주년 전시가 있었고, 이번 재개관이 그 세 번째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작품과 작가를 소개하며 리움은 ‘열린 미술관’으로 지향점을 뒀다. 김 부관장은 “그동안 리움의 문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관람객이 많았다”며 “작가의 연령대, 작품의 종류나 매체, 영역에 구애받지 않고 과거 리움에서 다루지 않았던 현대미술과 현대를 대표하는 작가를 수용해 문턱을 낮춘 전시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태현선 리움 학예연구실장은 “작품이 많아 어떤 관람객은 버겁다고 느낄 수도 있으나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작품과 취향을 발견하는 전시가 되리라 본다”고 했다.
작품이 방대한 만큼 모든 전시는 일관된 주제와 메시지 전달에 주력했다. 고미술 상설전에선 ‘권위와 위엄, 화려함의 세계’(1층), ‘감상의 취향’(2층), ‘흰빛의 여정’(3층), ‘푸른빛 문양 한 점’(4층) 등으로 각층을 꾸몄다. 현대미술 상설전에서도 ‘이상한 행성’(B1층), ‘중력의 역방향’(1층), ‘검은 공백’(2층) 등 세 개의 주제를 선보인다.
태현선 실장은 “전시마다 특화된 주제를 부여해 층별로 구성했다. 각 장르의 정수를 키워드로 뽑아내자, 미술사 중심의 전시에서 보여주기 어려웠던 소장품을 꺼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향후 리움 전시의 큐레이션이 나아갈 접근법의 시작이 이번 전시이기도 하다.
재개관 기념으로 열리는 기획전은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을 주제로 잡아 총 7개의 섹션으로 선보인다. 곽준영 책임연구원은 “급변하는 21세기의 환경과 팬데믹 상황에서 인간 실존을 고찰하고,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낯선 존재들과의 공생을 고민한 20세기 중반의 전후 미술을 선보인 전시”라고 설명했다.
리움과 함께 문을 여는 호암미술관은 재개관 기념 기획전 ‘야금 (冶金):위대한 지혜’를 선보이고 있다. 국보 5점과 보물 2점 등 총 45점의 작품과 함께 오늘날의 조각, 설치미술, 영상이 함께 한다.
이광배 호암미술관 책임 큐레이터는 “인간의 예술적 행위에서 시작한 야금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오늘날까지 예술의 영역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금속공예를 통해 전통뿐 아니라 현대까지 이어진 한국미술의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40주년을 맞는 호암미술관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가 생전 30여년에 걸쳐 수집한 한국 미술품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김 부관장은 “미술계에서 잊혀진 존재로 자리했던 호암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해 재발굴, 재발견하는 것이 목표”라며 “호암과 리움의 차이를 두지 않고, 미술계가 주목하는 미술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융합형 전시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최고’, ‘초일류’를 지향하는 리움의 재개관이 미술계에 가지는 의미가 크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리움미술관의 재개관은 우리 한국 미술의 지평과 다양성을 넓혀준다. 한국 미술계의 커다란 축복이다”라며 리움의 귀환을 환영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미술시장의 큰손 역할을 했던 리움의 재개관으로 미술계가 활성화되고, 대중의 문화예술 향유 욕구를 폭넓게 충족시켜 주리라는 기대가 높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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