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소재의 종합예술이라 할 만큼 현대의 최첨단 소재들을 총망라한다. 칩 하나에 외부와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금속 배선, 신호의 혼선방지를 위한 절연체, 마모나 습기 등으로부터 보호해줄 유리질, 방열 소재 등 수십가지 소재가 들어간다. 여기에 미세 회로 패턴을 그려넣을 감광성 수지, 레이저, 플라스마, 거울 등을 만드는 소재, 칩 위에서 직접 각종 재료를 회로 모양으로 조각해내는 데 필요한 특수 가스 등이 집적돼 있다.
21세기가 반도체의 시대라면, 20세기는 석유· 플라스틱, 19세기는 철의 시대라 할 만하다. 인류는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을 찾아내 가공하거나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내 문명을 일궈왔다.
홍완식 서울시립대 교수가 쓴 ‘소재, 인류와 만나다’(세리북)는 화학이나 지구과학 등에서 주로 다뤄지는 소재가 역사·문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핀 흥미로운 소재 이야기다.
현대 문명의 기초이자 주 건축 소재인 콘크리트와 유리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로마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로마의 영광을 보여주는 건축기술인 ‘로만 콘크리트’는 화산이 준 선물이었다.제국의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큰 항만이 필요했던 로마는 화산재 덕에 거대하고 기발한 건축물들을 만들어냈다. 화산재를 석회가루와 섞어 물에 넣으면 뭉쳐져 단단하게 굳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로만 콘크리트의 백미는 현재 가톨릭 성당으로 쓰이고 있는 만신전으로, 내부 직경과 높이가 모두 43미터로, 철근 등의 뼈대 없이 세워진 세계 최대의 건축물이다. 로마의 콘크리트 기술이 제국의 멸망과 함께 명맥이 끊어져 산업혁명시대에 부활한 점은 미스터리다.
유리가 일상생활에 친숙한 소재로 본격 사용된 것도 로마제국에 들어와서였다. 모래를 녹이려면 섭씨 1700도의 열이 필요한데, 로마인들은 탄산나트륨을 넣으면 낮은 온도에서도 녹일 수 있다는 점을 활용, 유리를 본격적으로 대량생산했다. 빛을 그대로 들이면서 동시에 바람을 막아주는 유리창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로마제국의 쇠퇴 이후 유리 장인들이 베니스로 피신, 특히 16세기 무라노섬은 세계 유리산업의 중심으로 로마의 멸망과 함께 맥이 끊긴 유리공예 밀레피오리가 되살아나고 크리스털 유리, 유리 거울, 샹들리에 등이 발명된다. 판유리는 20세기 중반 필킹턴이 혁신적인 플로트 유리공법을 개발하면서 마천루시대를 연다.
그런가하면 ‘산업의 꽃’ 철강은 산업혁명과 함께 수요가 급증, 하중과 압력을 견디는 고속도강 개발이 이어진다. 특히 영국 철의 도시 셰필드의 철강 기술개발의 역사가 눈길을 끈다. 철강사에서 뺴놓을 수 없는 인물, 베서머의 철강제조공법, 여기에 망간과 탄소를 넣고 만든 경철을 섞어 만든 무셰트의 혁신적인 강철, 탄소와 크롬의 최적 비율을 찾아내 녹슬지 않는 식기류를 개발한 브리얼리, 니켈을 추가한 스테인리스 강의 개발과 용기 전반으로의 확산과정 등을 상세하게 소개해 놓았다.
책은 인류문명의 시작을 알린 돌부터 도시문명을 가능케한 청동, 석유의 부산물로 편리함과 환경오염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플라스틱까지 소재의 시선으로 인류역사를 되돌아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소재, 인류와 만나다/홍완식 지음/세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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