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낙상사고 후 중도장애인 된 이진수 씨

“장애로 한계 정한 건 남들이 아닌 내 자신”

기빙플러스서 30대 후반에 ‘진짜 자립’ 시작

“집 나와 걷기부터 도전”…인기 매니저 ‘우뚝’

이진수 매니저가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기업사회공헌(CSR) 전문 나눔스토어 기빙플러스 마곡나루점에서 근무하는 모습. 김희량 기자
이진수 매니저가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기업사회공헌(CSR) 전문 나눔스토어 기빙플러스 마곡나루점에서 근무하는 모습. 김희량 기자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비장애인으로도 산 경험이 있어서 ‘너 장애인이네’ 하는 시선이 참 두려웠어요. 그런데 다들 자기 생각에 바쁘더라고요. 어쩌면 세상과 거리를 둔 건 저 자신이더라고요.”

28개월. 누군가에겐 짧을 수 있지만 이진수(40) 씨에게는 역대 최장의 근무기간으로, 현재 일터인 기빙플러스에서 일한 세월이다. 이씨는 스물 세 살 때 아르바이트 출근 중 갑작스러운 낙상사고를 당한 후 걸음이 불편한 장애를 갖게 됐다. 뇌혈관에 피가 고이는 동정맥 기형이란 병 때문이었다. 여섯 살 때 두통으로 넘겼던 통증이 사고로 이어졌다고 한다.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은 후 이씨는 3년 정도 세상과 거리를 둔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재활을 통해 마비됐던 왼쪽 팔은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달리기, 자전거, 계단 오르기는 그가 할 수 없는 일이 돼 버렸다. 뇌병변 장애인이 된 이씨에게 가장 힘든 것은 달라진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어릴 적 두통이 있을 때 바로 병원에 갔으면’, ‘낙상사고 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등의 생각에서 나오기가 어렵더라”고 회상했다.

마음도 몸도 피폐했지만, 일은 해야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어머니의 청소 일을 도우며 생계를 이어나가던 어느 날, 이씨는 결심했다. “나이 든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죄송하기도 했고 좌절로 인생을 보내긴 시간이 아깝더라고요.” 그가 가장 먼저 한 건 무작정 걷기. 엉덩이를 빼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자세로 걷는 일은 그에겐 도전이었다. 집에서 공원으로, 이씨의 시선은 그렇게 밖을 향하기 시작했다.

2019년 12월 밀알복지재단 기빙플러스에 첫 출근하기까지는 중도 시각장애인인 동갑내기 친구의 도움이 컸다. “저보다 먼저 구직활동을 시작한 친구는 114에 무작정 전화해 ‘제가 이런 상황인데 도움받을 곳이 없을까요’ 물으며 일을 찾았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주변에 계속 묻고 워크넷, 장애인고용센터 등을 찾아가면서 맞는 일을 알아봤어요.”

이씨는 이런저런 시도 끝에 기관의 도움으로 기빙플러스와 연결됐다. 기빙플러스는 기업이 기부품을 분류·진열해 판매하는 나눔매장이다. 3개월 파트타임을 거쳐 지금은 지점 4곳의 근무 경험을 가진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 “일을 하고 보니 장애인이라고 저를 특별하게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며 “거리를 두는 제게 오히려 동료들이 반겨주고 평범하게 대하는 것에서 용기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느새 단골과 에피소드까지 갖게 된 인기 매니저로 성장했다.

이진수 매니저가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기업사회공헌(CSR) 전문 나눔스토어 기빙플러스 마곡나루점에서 근무하는 모습. 김희량 기자
이진수 매니저가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기업사회공헌(CSR) 전문 나눔스토어 기빙플러스 마곡나루점에서 근무하는 모습. 김희량 기자

이씨는 목표도 갖게 됐다. 이씨는 “랜덤박스처럼 각종 잡화가 들어오는데 고객에게 잘 설명하기 위해선 제품 용도나 특성도 일일이 공부해야 한다”며 “다양한 물품을 다루는 게 재미있다. 진열·물류 공부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아쉬움도 있다. 이씨가 집 밖을 나오지 않을 때, ‘너도 할 수 있다’면서 주변 사람들은 이씨보다 장애가 더 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내주며 계속 동기를 부여해 주려고 했다. 이씨는 “희망의 말도, 그땐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주입식 교육처럼 계속 들으니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는 지점이 있었다”며 “좀 더 일찍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면 좋았을걸”이라고 슬며시 웃었다.

이씨는 기빙플러스에서 일하며 라이브 방송 출연 등 새로운 경험을 늘려가는 중이다. 방송 사진을 인쇄해 매장에 붙여 주는 동료부터 멀리서 오는 단골손님까지. 집이 아닌 밖에서 걸어보기로 결심한 날부터 이씨의 삶의 색깔은 점점 더 다채로워지고 있다. 이씨는 “취약계층의 궁극적 목적은 자립”이라며 “저처럼 다른 분들도 일을 할 수 있도록 (각계각층에서)많은 지원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당부했다.


hop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