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한미훈련·이산가족 ‘이중적 태도’ 간주
김여정 “서로 의식하지 말고 사는 게 소원”
정부, 이산가족 정치적 이용 오해 살 수도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정부가 8일 북한에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 개최를 전격 제의했지만 북한의 수용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이날 “정부는 남북 당국 간 회담을 개최해 이산가족문제를 논의할 것을 북한 당국에 공개적으로 제의한다”며 “남과 북의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빠른 시일 내에 직접 만나서 이산가족문제를 비롯한 인도적 사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권 장관은 열린 자세로 회담에 임하겠다면서 회담 일시와 장소, 의제, 형식 등도 북한 측의 입장을 적극 고려하겠다며 적극성을 보였다.
앞서 5월 북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함에 따라 방역 협력을 위한 실무접촉을 제안한 적은 있지만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제안한 것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권 장관 명의로 리선권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수신인으로 하는 대북통지문 발송도 추진중이다.
권 장관은 전격적인 회담 제의 배경으로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이와 관련 “올해 추석에도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쓸쓸한 명절을 보내실 것”이라면서 “통일부 장관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체제와 이념의 차이가 가족을 갈라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부모와 형제의 생사조차 모른 채 70년이 흘렀다”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이산가족 생존자는 4만3746명인데 70대 8229명, 80대 1만6179명, 90세 이상 1만2856명 등 대부분이 고령자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사망한 이산가족 신청자만 2504명에 달한다.
이산가족상봉은 2000년 8월 처음 시작돼 2018년 8월까지 총 21회 진행됐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와 한반도정세가 경색되면서 4년 넘게 열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동시에 ‘이산가족의 날’인 이날 남북회담을 제의한 것도 고심의 결과로 풀이된다.
이전까지 남북 적십자채널로 이뤄졌던 이산가족 관련 논의를 이번에 당국 간 회담으로 제안한 것은 이산가족문제 해결이 시급한 만큼 포괄적으로 풀겠다는 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권 장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되더라도 실제적인 상봉을 시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여러 추가적인 조치들이 필요할 것”이라며 “현실적인 상황과 근본적인 상황을 다 포함해 당국 간 회담을 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산가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과거처럼 남북의 100가족씩 만나는 소수의 일회성 상봉이 아닌 신속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강조했다.
북한이 올해 들어 31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이미 7차 핵실험 준비까지 마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산가족문제를 꺼내든 것은 인도적 사안은 남북관계의 정치·군사적 상황과 무관하게 추진한다는 기조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북한의 호응 여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6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측을 향해 ‘대적투쟁’을 공언한 상태다.
특히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북남문제를 꺼내들고 집적거리지 말고 시간이 있으면 제 집안이나 돌보고 걱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김 부부장은 당시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며 윤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도 애써 감추지 않았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남북 당국 간 대화에 호응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는 게 합리적 판단”이라며 “더구나 북한은 윤석열 정부와 절대로 상대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이어 “정부도 북한의 수용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을 텐데, 국내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며 “이산가족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면 오히려 이산가족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도 “북한이 담대한 구상을 비난조로 거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산가족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한미가 북핵공조와 확장억제력을 강화하고 대규모 연합훈련을 실시하면서 한쪽으로 이산가족 상봉에 응하라고 메시지를 보낼 경우 북한은 이중적 태도로 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홍 실장은 “김 부부장의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는 발언은 솔직한 속내로 보인다”면서 “2019년 이후 남북관계와 대남 인식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들은 정부가 이산가족문제를 풀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홍 실장은 “담대한 구상의 기본 얼개와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면 대국민, 대북 설명을 다방면으로 진행한 뒤 내년 초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산가족상봉을 제안하고 설날이나 하반기까지 접촉면을 만들어 실무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모양새가 적절하다”고 제언했다.
임 교수 역시 “이산가족 상봉은 원칙적으로 정치와 무관하게 이뤄져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남북 간 신뢰가 상당 수준 구축돼야 가능하다”면서 “이산가족상봉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일관성을 갖고 종합적이고 정교한 접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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