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상징 에펠탑 불이 꺼졌다. 정확히는 소등시간이 새벽 1시에서 오후 11시대로 당겨졌다. 사우나의 나라 핀란드는 사우나 횟수를 주 1회로 제한하고 축구 사랑이 남다른 이탈리아가 세리에A리그의 조명시간을 단축키로 했다. 경제는 물론 문화, 예술 분야에서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서유럽이 에너지 대란에는 속수무책인 모습이 어찌 보면 낯설지만 에너지 안보를 아무 대안 없이 타국에 맡겨온 혹독한 형벌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그럼 에너지 안보는 어떻게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재생에너지로의 급격한 전환을 추진하면서 탄소세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던 유럽은 지정학적으로 이웃나라 에너지를 상대적으로 쉽게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르다. 분단국으로 사실상 섬나라인 한국이 무턱대고 유럽을 따라가면 안 되는 이유다. G2인 미국, 중국은 자국 내 자원 매장량이 상당하지만 국내 개발을 자제하면서 해외로 눈을 돌려 자원개발에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 역시 자원 빈국인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해외에너지 의존도 94%인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액 폭증에 따라 올해 국제무역수지 적자가 300억달러에 달할 수도 있다는 최악의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에너지 안보는 어찌 보면 지금 유럽보다 한국이 더 시급한 문제일 수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최근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해외자원개발은 935개 사업(석유가스 386개, 광물 549개)에 참여해 2020년 말 현재 63개국 419개 사업(석유가스 118개, 광물 301개)이 진행 중인데, “2014년부터 해외자원개발 진행사업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석유·가스, 우라늄 및 니켈 등의 자원 개발률 또한 하락 추세에 있다”며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우려가 어제오늘 일이 아님에도 한국은 공기업의 과거 투자 실패의 트라우마와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정부 예산규모 축소 등으로 해외자원개발 투자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산업 패러다임 변화로 석유가스전 개발은 물론 니켈·리튬·희토류 등 新산업 광물들의 수요가 크게 늘어 확보 경쟁이 국제적으로 치열한 데 이에 대한 대응도 민간에 맡겨놓은 상태다. 해외자원개발의 주체가 민간중심으로 변화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자원 안보 차원에서 자원개발 선순환 구조가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장기적이고 꾸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해외자원개발을 위한 공적금융기관의 금융지원을 확대하고 자원개발 사업에 대해 세제지원을 확대하는 등의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의 에너지 정책이 국가 안보차원의 공급망 확보라는 치열한 생존의식은 결여된 채 정치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왜곡되고 있는 것은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에너지 자립도가 낮고 세계 에너지 안보 130위라는 취약한 위치에 있는 우리나라는 자원의 안정적 수급이 무엇보다 매우 중요하며, 해외자원개발 정책이 가지는 의미 또한 크다는 냉정한 인식을 다시 한번 할 때다. 그것이 수출중심국인 한국의 공급망 안정을, 인플레이션 억제를, 원화가치 하락을 막는 길이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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