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해석이다. “시는 행(行)과 연(聯)으로 구성된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 아래로 쌓여가는 게 시다. 인생도 걸어가면서 쌓이는 것이다. 그러니 인생에도 육성이 있다면 그게 곧 시다”
그래서 이 책 제목 ‘인생의 역사’는 곧 ‘시의 역사’로 다가온다.
저 까마득한 옛날의 ‘공무도하가’에서 문을 열어 21세기에 지어진 ‘사랑의 발명’까지 시간을 초월한 다양한 시들이 빼곡히 실려 있는 이유다.
소제목만으로 ‘인생’이란 걸 감각적으로 담아낸 저자의 치밀함과 일목요연함이 돋보인다. 1부 ‘고통의 각’, 2부 ‘사랑의 면’, 3부 ‘죽음의 점’, 4부 ‘역사의 선’, 5부 ‘인생의 원’(끝부분에 있는 부록의 제목은 ‘반복의 묘’)이다.
1부 첫번째로 실린 ‘공무도하가’에 대해 저자는 가장 오래된 인생과 그 고통이 담겨 있기에 이 시로 문을 연다고 말한다.
2부 첫 시 ‘소네트 73’(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대해선 시 말미의 “그대가 머지않아 잃을 수 밖에 없는 그것”(저자는 사랑으로 해석)에 대해 여러 독법이 있다며 그 모호성을 즐기라고 권한다.
3부 첫 시는 김시습의 ‘나는 누구인가’인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연결지은 독법이 이채롭다. 김시습은 어릴 적 신동 소리를 들었고,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이후 속세를 버리고 승려가 되는 비운을 겪는다. 그는 말년의 시에서 자기혐오와 비참함을 드러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마지막 문장은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이다. 저자는 이에 주목한다면 ‘살아남은 자의 슬픔’보다는 ‘살아남은 자의 자기혐오’가 시의 감정에 더 적절한 제목일 수 있다고 봤다.
4부는 ‘방패 때문에’(아르킬로코스)와 ‘가장 아름다운 것’(사포) 두 개의 시로 문을 연다. 저자는 “애국심은 사악한 자들이 내세우는 미덕이다”라는 말을 거론하며, 국가나 통치자가 강요하는 그런 애국심 말고,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국민)을 계속 사랑하는 그런 애국심을 지지한다.
5부의 첫 시는 ‘임에 대한 각서’(이성복)다. 저자는 평론가 김현이 이성복의 비관주의를 ‘따뜻한 비관주의’라고 명명한데 주목한다. 여기서 이성복이 내심 스승으로 삼은 카프카까지 내달린다. ‘카프카의 문학은 비관적인데 어째서 우리는 위로를 받는가’라는 질문에 이성복은 카프카의 문학은 “인생이라는 화마를 잡기 위한 맞불”(‘극지의 시’)이라고 답한다. 즉 “하나의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임의의 다른 절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저자는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겪은 만큼 더 느끼게 되고, 새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사실 서평이란 게 무의미해 보인다. 수록된 시를 감상하고, 각자가 경험한 만큼 느끼면 된다. 저자를 포함한 여러 동료작가와 평론가들의 다양한 시각과 해설은 참고만 하시고.
헤럴드경제 논설실장
pils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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