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포기 19년만에 과학자로
바이오·뇌공학 전공 차유진박사
내일 KAIST 졸업식 대표연설
“어린 환자의 죽음을 보면서 의사로 한계를 느꼈습니다. 현대의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결국 과학기술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젊은 인재들이 세상을 바뀔수 있는 건 과학자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인재들의 블랙홀이 된 의사. 공부 좀 한다싶으면 너도나도 의대 진학이 희망이 됐을 정도로 의사라는 직원은 부모님의 자랑이고, 신분 상승의 보증수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의사를 포기하고 힘든 과학자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 카이스트(KAIST)에서 바이오및뇌공학을 전공한 차유진(38세·사진)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전문의를 포기하고 입학 19년만에 KAIST에서 바이오및뇌공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차씨는 “세상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나 많지만, 세상의 지평을 넓히고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과학기술이라고 믿었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차 씨는 지난 2004년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에 입학한 뒤 타 대학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가 됐다. 의사의 길을 걷던 그는 골육종을 앓던 어린 환자의 죽음을 계기로 의사과학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의사는 환자를 치료할수 있지만, 의사과학자는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6면
차 씨는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사결정의 특성을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규명하고 이를 활용한 뇌 기반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다양한 전공 분야의 임상 의사 약 200명을 피험자로 참여시켜 수집한 데이터로 본질적인 기계학습 이론 개발을 시도한 독창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다.
그는 “인간은 인공지능이 가진 고유한 학습 능력을 활용해 자신의 전문성을 계발하고, 인공지능은 인간의 학습 능력을 모사해 성장하는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다”면서 “인간과 기계가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에 반응하면서 진화하는 단계까지 기술을 발전시켜 의료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활용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의사과학자는 임상 의료와 연구를 동시에 수행하는 바이오의료 전문가다.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의사과학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미국은 의과대학 졸업생 가운데 한해 1700여명이 의사과학자로 육성되는 반면 한국은 30여명도 안된다. 코로나19 치료제를 미국에 의존할수 밖에 없었던 것도 이를 만들어 낼수 있는 의사과학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바이오헬스 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나타난다. 반도체를 뛰어넘는 고성장의 바이오헬스 시장에서 한국의 글로벌 점유율은 2% 수준에 불과하다.
KAIST는 턱없이 부족한 국내 의사과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6년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중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최근 KAIST의 의사과학자 양성을 적극 지원하라고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의사과학자 양성이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강조했다. 이 총장은 “목표를 향하여 미래를 그려보고 노력해간다면, 미래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작품일 수 있다”면서 “꿈의 여정을 멈추지 말고 실패를 만나더라도 포기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차씨는 17일 KAIST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 대표연설을 한다.
구본혁 기자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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