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갈등은 우리 사회의 미래에 가장 큰 도전이다. 가장 위험한 화약고다.
우리가 일찍이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양상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와 강도로 퍼지고 커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치적으로는 적대적 양극화, 사회·경제적으로는 저출산·고령화 현상과 직접 관련이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도 젠더 갈등은 향후 몇 년, 몇십 년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해결과제다.
젠더 갈등은 마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처럼 매우 갑작스럽게 나타나 급속도로 퍼지고 커졌으며 순식간에 치명적이 됐다. 병역제도나 여성할당제, 여성가족부 논란 등에서부터 성폭력 폭로(미투운동), 각종 혐오범죄 등에 이르기까지 잇따라 불거진 젠더 갈등과 그 전개 양상은 정치권과 우리 사회가 이에 얼마나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얼마나 무능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젠더 갈등의 인구통계학적 배경은 여성 인구 비중의 증가다. 우리 사회의 성비가 역전돼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아졌다. 지난 2021년부터 대한민국 국적인 사람 중에서, 대한민국 땅에 사는 사람 중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다. 앞으로도 수십 년간 이 추세는 변함이 없을 뿐 아니라 더 강화될 것이라는 것이 통계청 예측이다. 남성이 인구와 권력에서 ‘다수’였던 시대는 가고, 남녀의 역할과 위상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바뀌어야 하는 새로운 시기에 들어선 것이다. 비약하자면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던 대한민국이 아니다. 새로운 성 역할의 모색과 수용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도전이라면, 수십 년 전의 사회와 인구구조에 기반을 둔 법과 제도를 새롭게 뜯어고쳐야 하는 것은 우리 정치가 안은 과제다.
근대적 인구통계 100년 만에 여성이 다수가 되다
미국의 정치저널리스트인 에즈라 클라인은 저서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이하 ‘우리는 왜’)’에서 백인 인구의 비중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와 인종 갈등의 확산, 이로 인한 적대적 정치양극화 현상을 분석하면서 “인구의 변화와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두려움과 희망은 이 시대 미국을 형성하는 지각구조적 힘”이라고 했다.
‘우리는 왜’는 미국에서 비(非)히스패닉계 백인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어 2045년엔 역사상 처음으로 소수 인종이 될 것이라는 예측에 주목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단적인 반이주민 정책과 이를 지지하는 백인들의 강력한 결집은 이 같은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백인들의 정체성 위기를 반영한다는 것이 에즈라 클라인이나 ‘정치적 부족주의’의 에이미 추아 예일대 법대 교수의 공통 분석이다.
미국의 인종에 비견할 만한 이슈가 우리 사회에선 ‘성(性)’이다. 저출산·고령화와 함께 인구구조의 근본적이고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것이 성비 역전이다. 행정안전부와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21년부터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많은 ‘여초사회’에 들어섰으며, 이는 장기적인 추세로 사실상 불가역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행정안전부가 전산망으로 집계해 다달이 발표하는 주민등록인구는 지난 2015년 6월부터 여성이 더 많아졌다. 통계청에서 하는 국민 전수조사인 인구총조사에선 2021년부터 여성 인구가 남성을 앞질렀다. 한 번 역전된 성비는 2070년까지 유지될 것이라는 게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결과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다수의 지위를 잃게 된 집단이나 새롭게 다수가 된 집단 모두에 위협과 불안, 불만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사회적 분열과 정치양극화의 배경이 된다.
미국에선 2030년이면 이민 인구가 신생아 수를 추월해, 인구 증가의 주요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로부터 15년 후엔 백인이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내 소수 인종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에즈라 클라인은 “오늘날 미국에서는 그 어떤 집단도 충분히 지배적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모든 집단은 직업과 전리품뿐만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할 권리를 놓고 다른 집단과 대결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제로섬 집단 경쟁, 즉 순수한 정치적 부족주의로 전락한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 성비의 변화가 남성과 여성에게 모두 위협적인 요인이라고 할 것이다.
‘개딸’과 ‘이대남’, 젠더 갈등과 정치양극화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남성이 수적으로도 많고 권력도 강한 ‘남성 중심사회’였다. 그러나 추세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고 권리도 강화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더구나 이제는 남성 다수의 시대마저 갔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남성 중심이지만 남성의 권력은 지속해서 약화되고 있다. 여성들은 사회적 약자이지만 인구상 새로운 다수의 지위를 차지했다. 이는 남성과 여성 모두의 정체성에 위협적이고 도전적인 요인이다. 심리 차원에서 보자면 지금의 젊은 남성들은 ‘역차별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병역, 여성할당제, 미투 운동(성폭력 폭로)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여성들은 여전히 억압과 차별을 받고 있으며 능력에 걸맞은 보상과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임금 격차, 성폭력, 출산·가사·육아 부담이 그렇다. 남녀 모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젊은 남녀들은 데이트에서 누가 얼마만큼 돈을 낼 것인지, 직장에서 생수통은 누가 갈아야 하는지와 같은 일상의 문제들은 물론이고, 병역제도 개선, 여성가족부 존폐, 비동의강간죄 신설 여부 등 사회적 이슈를 놓고 사사건건 대립한다. 온라인에선 커뮤니티가 여초·남초로 분리되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혐오·증오감정까지 서슴없이 드러낸다.
‘개딸’과 ‘이대남’이라는 단어가 지닌 정치적 뉘앙스처럼 젠더 갈등은 정치양극화와 곧바로 연결된다. 지난 몇 차례의 선거에서 ‘개딸=20대 여성=더불어민주당 지지=이재명 팬덤’ ‘이대남=20대 남성=국민의힘 지지=이준석 팬덤’이라는 현상과 인식을 고착화했다.
인종과 종교, 지역, 학력 등의 비이념적·비정치적 요소들이 특정 정당의 정체성에 겹겹이 포개져 고착화되면 정치적 분열은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극단화한다. ‘우리는 왜’의 핵심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이를 우리 정치에 대입하면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계층·세대·지역·직업으로 나뉘고, 쉽게 변하지 않는 각 당의 정체성 일부가 된다. 여기에 새롭게 덧붙여진 것이 젊은 유권자들의 성별 분화다.
젠더 갈등,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렸다
젠더 갈등은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젊은 세대가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고 저출산·고령화의 핵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이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지난 2021년 7월 12~14일 전국 유권자 1208명을 대상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이 무엇이냐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20대는 가장 많은 42.0%가 ‘남녀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답했다. 반면 전체 응답자는 ‘빈부 갈등’(39.2%)을 첫손에 꼽았다. 또 지난 2022년 영국 킹스칼리지가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에 의뢰해 발간한 ‘세계의 문화 전쟁: 사회 갈등(분열)에 대한 각국의 인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국민 80%가 ‘남녀 갈등이 매우 크거나 상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 압도적으로 세계 1위였다. 설문조사 대상국 28개국의 평균은 48%였다. 이 설문조사는 국가별로 500~1000명씩 총 2만3004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모두 12개의 갈등 항목 중 한국은 남녀 갈등을 포함해 빈부, 종교, 이념, 여야, 학벌(대졸-비대졸), 세대 등 7개 분야에서 1위였다.
젠더 갈등은 젊은 세대의 결혼 기피와 맞물려 저출산·고령화를 가속시키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1700건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역대 가장 적었다. 혼인 건수는 11년째 감소 중이며 4년째 역대 최소치를 경신 중이다. 앞으로 ‘결혼과 출산을 꼭 하겠다’는 젊은 세대가 줄어드는 건 더 큰 문제다. 중앙일보가 에스티아이에 의뢰해 전국 20~39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월 27~28일 실시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5%포인트)에서 미혼인 응답자의 32.1%는 ‘결혼 의향이 없다’고 했다. ‘결혼 의향이 있다’는 대답은 58.6%였다.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응답은 39.9%, ‘그렇지 않다’는 56.4%였는데 여성에서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67.9%로, 남성(45.9%)보다 높았다. 조선일보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2022년 12월 26~27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22명에게 ‘나나 내 자녀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불편할 것’이라는 답이 43.6%, ‘편할 것’이라는 답이 45.7%였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요컨대 혼인율은 자꾸 떨어지고 ‘결혼을 꼭 하겠다’는 젊은 세대도 많지 않다. 특히 인구 다수가 된 여성층에서는 결혼 기피 현상이 더 심하다. 최근 20·30대 남녀의 정치 성향은 분화되고 있는데 그들 두 명 중 한 명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끼리는 결혼하기가 꺼려진다’고 생각한다.
‘개딸’의 연대주의와 ‘이대남’의 능력주의, 그들의 연애를 허하라
‘개딸’은 지난해 3월 대선을 전후해 형성된, 20·30대 여성 중 이재명 민주당 대표 열성 지지자를 뜻한다. 20대 남성의 줄임말인 ‘이대남’은 다수가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대선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했고, 이준석 전 당대표에게 강력하게 동조했다. 말은 이대남이지만 대체로 30대 남성까지 포함해 젊은 남성을 의미한다. 개딸과 이대남의 정치적 의견은 각각 여초·남초 온라인 사이트에서 주로 표출되고, 집단행동 역시 온라인을 통해 이뤄진다. 대표적인 커뮤니티는 개딸은 ‘더쿠’, 이대남은 ‘펨코’다. 이 사이트들은 각각 아이돌 팬덤과 축구게임동호회 성격으로 출발했지만 강한 정치 지향을 띠게 됐다. 문제는 이들의 정치 성향이 특정 정치인의 지지와 결합되면서 여야 두 정당에서 이들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종종 놓인다는 것이다. 개딸은 민주당 내 비명(비이재명)·친문(친문재인)·친낙(친이낙연)에 배타적이다. 이대남은 친윤(친윤석열)·윤핵관은 물론이고 대구·경북으로 대표되는 여권 구주류에 비판적이다. 개딸이나 이대남이나 여야의 전통적인 주류와는 결을 달리하는 비주류 지지층에 더 가깝다. 이들이 주류 정치권에서 종종 ‘악마화’되는 이유 중 하나다. 일부 극성 지지층의 일탈성 행동이, 개딸과 이대남으로 통칭되는 적극적인 청년 정치 참여층 전체의 것으로 호도되고 비난받는 원인이다. 여기에 더해 개딸과 이대남의 정치적 구심이 되는 이재명 대표와 이준석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기존 세대가 이들의 커뮤니티 게시판을 들어가면 당장 일상적인 욕설과 줄임말, 위악적인 말장난과 행태가 높은 진입장벽이 될 것이다. 이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선 이 허들을 넘어서야 하듯 개딸과 이대남이 갖는 정치 지향의 긍정적 면모를 알기 위해선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에 의해 만들어진 부정적인 편견을 버려야 한다. 일부 극성 집단을 제외하면 개딸이 표상하는 20·30대 여성의 정치사회적 지향은 ‘약자의 포용’과 ‘연대주의’다. 이대남으로 대표되는 젊은 남성들의 그것은 ‘공정한 경쟁’과 ‘능력주의’다. 포용과 공정, 연대와 경쟁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 우리 사회를 진전시키는 두 수레바퀴다. 이재명과 이준석이라는 필터를 걸러내면 젊은 세대의 지향은 훨씬 더 선명히 보인다. 일부 정치권에서 폄하하듯 개딸은 ‘사생팬’이 아니고, 이대남은 ‘철부지’가 아니다. 이들이 두 거대 정당의 선거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때마다, 권력구도 재편의 핵심 변수가 될 때마다, 당 내외 현안에 목소리를 키울 때마다 이해를 달리하는 세력 쪽에선 개딸을 ‘극성스토커’, 이대남을 ‘천둥벌거숭이’라 욕하곤 한다. 이것이 ‘정치적 꼰대짓’이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다. 일부의 일탈이 없는 집단은 세상 하나도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딸과 이대남으로 표상되는 젊은 남녀 세대는 선명한 정치 지향을 가진 성숙한 유권자들이다.
지금까지 국민을 남녀로 편 가르고, 나이로 갈라쳐 이익을 도모해왔던 것은 오히려 정치권이 아닌가. 젠더 갈등은 물론이고 세대·지역·이념·계층 등 우리 사회의 각종 갈등을 오히려 부추겨왔던 것은 기존 정치권이 아닌가.
정치권은 개딸과 이대남을 비난하고 외면하기보다는 젠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제 할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는 것이 바로 국가와 정치의 의무다. 그래서 취업경쟁이 제한된 일자리를 놓고 남녀가 적대적으로 싸우는 ‘제로섬’게임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병역, 여성할당, 성폭력 관련법, 남녀 임금 격차 등 시대에 뒤처진 법과 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그것이 곧 사회 통합을 이루고 저출산·고령화를 극복하는 해법이다.
개딸과 이대남은 죄가 없다. 그들이 평화롭고 사이 좋게 공존하고 대화하도록 정치가 판을 깔아줘야 한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그들의 연애에 달렸다. 결혼하고 출산하고 세금 내고 연금으로 기존 세대를 부양할 이들 아닌가. 그러므로, 개딸과 이대남의 연애를 허하라.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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