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건물 출입구에 우산 비닐이 있으니 뭔가 꼭 써야 할 것 같죠. 잠깐 담배 피우러 나갈 때도 한 장, 점심 먹고 나서도 한 장, 오늘 몇 장이나 썼더라.”
연일 폭우가 쏟아지는 요즘, 직장인 A씨는 하루에도 몇번씩 일회용 우산 비닐을 썼다고 했다. 건물 앞에 있어 의무적으로 써야 할 것 같다. 건물을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한 장씩 또 쓰게 된다.
“너무 아깝죠. 그런데 물기 가득한 비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순 없잖아요. 그렇다고 회사가 건물 앞에 버젓이 놨는데, 안 쓰면 뭔가 잘못한 것 같고….”
장마철이 되자 일회용 우산비닐이 또 넘쳐나고 있다. 대부분 일회용품이 한번 쓰고 버려지지만, 이 일회용 우산비닐은 그야말로 ‘반짝’ 쓰고 버려진다. 건물에 들어가고 나갈 때 한 번 쓰이고 바로 버려지는 일회용 쓰레기다.
비닐 대신 헝겊에 물기를 닦는 빗물제거기가 대안으로 쓰인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건물 등에선 일회용 우산비닐이 사용된다. 건물마다 넘쳐나는 일회용 우산비닐들, 하루에만 얼마나 쓰일지 쉽사리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우산 비닐 사용은 제도적으로 금지돼 있다. 문제는 일부 장소에 한해 금지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부터 3000㎡ 이상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 등 대규모 점포에만 비닐 규제가 적용됐다. 이마저 오는 11월까지는 1년 간 계도 기간이다. 비닐을 사용하더라도 처벌이 없다.
하루에도 몇장씩 무심코 쓰다 보니 일회용 우산 비닐 쓰레기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자원순환사회연대에서 2017년 지방자치단체별 일회용 우산 비닐 구입한 비용을 토대로 추산한 사용량은 연 1억장 가량이다. 이는 관공서 등으로만 파악된 수치다. 민간에서 쓰는 양은 빠져 있다. 당연히 민간에서 쓰는 비닐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공공기관 등에선 현재 일회용 비닐 대신 빗물제거기를 주로 쓰고 있다. 하지만 민간 건물 등에선 우산 비닐을 쓰니 한 공간에서 빗물제거기와 일회용 우산비닐이 공존(?)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의 서울역 4번 출구.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자 빗물제거기가 마련돼 있다. 그리고 바로 통로로 연결돼 있는 인근 건물 출입구엔 일회용 우산비닐이 놓여 있었다. 같은 공간인데 한 출구는 빗물제거기, 다른 출구는 일회용 우산비닐을 쓰는 셈이다.
일회용 우산 비닐의 수명은 무척 짧지만 그로 인한 환경 오염은 길다. 물기가 묻어 있어 재활용하기 보다는 대부분 일반쓰레기로 버려진다. 일회용 우산 비닐의 소재는 주로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매립 시 썩는 데 100년 이상 걸리고, 소각하면 다이옥신 등 유해 물질이 나온다.
이미 제한된 대규모 점포나 관공서 외에 민간에서도 일회용 우산비닐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관공서 등에서 일회용 우산 비닐 퇴출은 자리 잡았으니 이제는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나 대기업의 자발적인 동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자원순환사회연대와 함께 지난 2018년부터 빗물제거기를 도입한 스타벅스가 대표적 예다. 스타벅스의 여름철 1일 방문객(2021년 기준)은 80만명 수준. 여기에 6~8월 평균 강수일(최근 10년간·서울 기준)이 39.5일임을 감안하면 연간 약 3200만장 정도 일회용 비닐을 줄인 꼴이다.
김미화 이사장은 “사람들은 비닐이 비치돼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쓴다”며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우산 비닐 같은 일회용품부터 줄이는 등 일상에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 보호부터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