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울릉군 서면 태하리 다랑논에서 36년만에 첫  벼수확현장에서 주민들이 족답식 탈곡기를 사용하고 있다(울릉군 제공)
19일 울릉군 서면 태하리 다랑논에서 36년만에 첫 벼수확현장에서 주민들이 족답식 탈곡기를 사용하고 있다(울릉군 제공)

[헤럴드 대구경북=김성권 기자]19일 경북 울릉군 서면 태하리 일주도로 인근 다랑논에서 36년만에 첫 벼수확 현장에 족답식 탈곡기가 등장에 눈길을 끌었다. "족답식 탈곡기(足踏式 脫穀機)"는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때 일본에서 수입된 뒤로 한국에서 제조해 농가에 보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조는 목재와 합판 또는 아연으로 만든 기틀에 회전 통을 설치하고 회전 통에는 강철선으로 된 급치를 박았다. 회전 통 옆에는 톱니바퀴가 부착되어 있고 뒤에는 발판이 있으며,발판과 회전 통은 톱니바퀴로 연결되어 있는데,사람이 뒤에 서서 발판을 밟으면 톱니바퀴가 작용하면서 고속으로 회전통이 돌아가게 돼 있다.

19일 36년만에 울릉도에서 가진 벼수확현장에  주민들이 족답식 탈곡기를 사용하고 있다
19일 36년만에 울릉도에서 가진 벼수확현장에 주민들이 족답식 탈곡기를 사용하고 있다

이때 볏단을 잡고 이삭을 회전 통에 대면 급치에 부딪쳐 낱알이 떨어진다.

기계의 크기는 회전통의 길이에 따라서 1인용과 2인용이 있었는데, 초기에는 1인용이 먼저 쓰이다가 점차 2인용이 많이 쓰였다. 타작(打作)을 할 때는 기계를 직접 작동하는 사람 2명 이외에도 볏단을 집어주고,탈곡기 앞의 볏짚을 치우고, 기계 앞을 손질하는 사람4~5명은 있어야 작업이 원활히 이루어진다. 이러한 족답식 탈곡기는 동력 탈곡기가 보급될 때까지 쓰이다가 점차 사라 졌지만 우리 농기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탈곡의 제왕(帝王)으로 불러졌다.


ks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