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난 7일 한낮의 언론사 사무실에 무장괴한들이 습격, 12명이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2006년 이후 무슬림(이슬람교도) 풍자 만평을 꾸준히 게재해왔던 ‘샤를리 엡도’라는 주간지를 달갑지 않게 보던 이슬람 단체의 테러 사건이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 포비아’가 확산된 가운데 또 한 번 믿기지 않는 공포를 조장한 이번 사건은 세계 각국의 대중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3년 11월 이라크 티그리트에서 오무전기 직원 2명이 무장세력에 의해 피살됐고, 2004년 5월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씨가 무장세력에 납치된 뒤 참수된 채 발견된 사건을 시작으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이슬람 단체의 테러 사건도 적지 않았으나 아직 국내 대중문화 안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국내 안방 드라마 안에서 이른바 ‘코슬림(코리아 무슬림)’이 등장한 사례는 없으며, 지난 2008년 방송된 KBS2 ‘미녀들의 수다’에서 히잡을 두른 이집트 미녀로 당시 경희대 국문과에 재학 중이던 사마르가 등장, “이집트에서 드라마 ‘겨울연가’, ‘가을동화’가 TV를 통해 방송됐는데 배용준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말한 것이 예능 프로그램 사상 최초 무슬림의 출연이었을 뿐이다.

미국, 영국 등 다민족국가의 경우 우리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9.11 테러 직후 해외 드라마에선 ‘대테러척결’을 강조하는 드라마가 무수히 제작됐던 것을 시작으로 10여년의 시간을 거듭하며 조금씩 변화가 일었다. 이슬람권 문화에선 그들 나름의 시각을 담은 드라마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 9.11 테러 이후 달라진 미드, 영드=2001년 9월 11일 세계 금융의 심장 뉴욕 맨하튼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유나이티드 항공의 여객기 두 대가 날아들며 미국인들을 충격과 공포에 몰어넣은 9.11 테러는 미국 드라마(이하 미드)도 변화시켰다.

기본적으로 과거와는 달라진 영웅관을 보여줬으나, 의미심장한 변화는 국가관이었다. 티캐스트 계열 영화채널 스크린 이충효 팀장은 “테러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는 미국인의 자문화 중심주의가 대두됐고 테러 척결을 위해 강한 미국을 강조한 드라마가 많았지만, 2010년대로 접어들며 또 다른 변화가 읽히기 시작했다”며 “편견과 비난의 대상이었던 아랍계를 비롯한 미국 내 소수민족에 대한 포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슬람 포비아’를 넘어 수용의 자세로 넘어들었다는 설명이다.

2011년 10월 첫 방송된 ‘홈랜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알케에다에서 감금된 미군들이 구출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홈랜드’의 주인공은 사실 아랍계 미국인이다. 미국 내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드라마는 두 나라의 문화를 겪으며 방황하고 고뇌하는 주인공을 그렸고, 부당한 편견과 공격의 대상이었던 아랍계 사람들을 포용하려는 자세를 유지했다.

인기 미드와 영드에 주인공 그룹의 한 사람으로 이슬람권 배우가 등장하는 것도 그들을 ‘공공의 적’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다. 자국민이 된 수많은 무슬림을 포용하기 위한 수단이자, 막강한 소비력을 행사하는 사회구성원으로 떠오른 이들 시청자를 잡기 위해 다양한 드라마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노출시키고, 더불어 사는 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상업 방송사의 영리한 영업전략이면서도 이는 변화한 시대의 흐름이기도 했다.

하이틴 드라마 사상 가장 황폐하고 퇴폐적인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국드라마 ‘스킨스’도 그 일례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10대들에게 가족과 사회는 더이상 그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지 않는다. 이들에겐 오직 곁에 있는 친구들만이 현재의 출구일 뿐이다. 물론 그것 역시 언제 부숴질지 모르는 연약한 커뮤니티다. 그 중 앤워는 거식증과 약물중독에 걸려 자신을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소녀와 난봉꾼, 대마초를 신성시하고, 가장 친한 친구가 게이라는 사실을 가족들에겐 입도 뻥긋 못하는 무슬림 소년이다. 무리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클럽에 드나들고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접근해 “앗살라무 알라이쿰(신의 가호가 있기를)”을 말하며 술과 마약에 절어든 황폐한 새벽을 보내고도 집으로 돌아와선 매일 다섯번씩 기도를 올린다. 공존하는 문화를 동시에 수용하며 향유하는 대표적인 캐릭터였다.

▶ 이슬람권 드라마는 어떻게 나타났나=전 세계 대중문화를 흔드는 영미 문화권에서의 전반적인 경향과 무관하게도 이슬람 문화권의 국가에선 자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혹독하게 겨냥하기도 했다.

2005년 방영된 두바이 MEB방송의 30부작 ‘아름다운 처녀들‘은 그 해 라마단 최고 인기 드라마로 올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사건을 소재로 삼아,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가 알라의 이름을 빌어 감행한 주택가 폭탄테러로 서구인뿐 아니라 같은 무슬림들이 이유 없이 희생되는 과정을 그렸다.

드라마는 예고편에서부터 “이 드라마를 무고한 테러 희생자들에게 바친다”는 문구가 삽입됐으며, 비정상적인 근본주의 무슬림을 비판한 ‘반테러리즘’을 표방한 드라마였다.

당시 아랍권TV방송사의 대목이라 할 수 있는 라마단에서 이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자,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하드(성전)의 명분에 과감히 물음표를 던진 드라마가 신성한 라마단 기간 중 아랍세계를 뒤흔들었다”고 평가했다.

이 드라마는 무사히 방영을 마쳤으나, 근본주의 단체를 비판하거나 아랍사회의 금기를 다룬 작품들은 ‘테러 협박’을 받으며 조기종영하기 일쑤였다.

2004년 라마단에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을 정권을 비판한 드라마 ‘카불로 가는 길’이 높은 인기를 모았지만 근본주의 단체의 테러 협박에 전체 30회 중 8회까지만 방송된 뒤 중단됐다. 강경파 근본주의자들이 숱한 협박편지와 이메일을 보냈으나 시리아인 프로듀서 나즈다트 안주르는 수정 없이 방영을 강행했다. 당시 그는 “이슬람이 폭력의 종교가 아닌 평화와 대화의 종교임을 알리려 했다”고 설명했으나 결과는 ‘방영 중단’이었다.

2010년 시리아에선 라마단을 겨냥해 제작한 ’마 말라카트 아이마누쿰(내 오른손이 소유한 것)‘이 아랍사회에서 다루기 힘든 성(性), 이슬람과 폭력 등을 다루면서 논란이 일었다.

여성 노예 및 첩과 관련된 코란의 문장을 제목으로 따온 이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인 ’라일라‘는 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이슬람 전통복장인’니깝‘을 벗겠다고 주장, 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은 물론 그녀의 어머니는 전화받기를 거부하고 오빠들은 그녀를 살해하기 위한 모의를 꾸미면서 난관에 처하게 된다.

시리아에선 이 드라마가 이슬람의 이미지를 왜곡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위선적인 무슬림 사회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찬사를 동시에 받으며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다. 시리아의 저명한 이슬람 학자이며 다마스쿠스 대학의 이슬람법과대 교수인 셰이크 무함마드 사에드 알-부티는 “드라마가 계속 방영된다면 신의 분노가 폭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드라마를 제작한 나즈다트 안주르는 당시 AP통신을 통해 “드라마는 종교가 양날을 가진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종교가 올바로 정착되지 않으면 특정 조직이 사회 내의 다른 구성원을 배제하고 적개심을 조장하는 것은 물론 분파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구실을 제공할 수 있다”며 “아랍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아니라 내부로부터 쇠퇴하는 아랍 사회를 파노라마식의 드라마로 그려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라마단 기간 방영되는 드라마는 상당히 다양해서 그들의 문화와 체제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반유대주의를 담고 있는 드라마도 적지 않아 미국과 이스라엘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2002년 11월 이집트 국영 TV가 제작한 라마단 특집 40부작 드라마 ‘파리스 빌라 가와드(기수 없는 말)’는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까지 영국의 이집트 식민지배와 이스라엘 건국에 반대해 싸우는 이집트 언론인 하피즈 나기브의 투쟁사를 그렸다. 이 드라마는 그해 라마단 기간에 아랍 대부분 지역에서 방영됐으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드라마가 19세기 반유대주의 책자인 ‘시온 장로들의 의정서’의 사상을 담고 있다며 방영 취소를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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