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된 일이다. 1주일 후에 인터뷰를 하기로 한 사람한테 갑자기 연락이 왔다. “김 기자님. 어떻게 해요. 다음주에 해외출장이 급히 잡혀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안되겠네요. 내일부터는 준비도 해야 하고 해서….” 공들여 섭외한, 아주 유명한 기업인이었다. 다음을 꼭 기약할 수도 없거니와 지면 게재일자도 빡빡했다. 할 수 없지, 뭐. “그럼, 오늘이라도 하시죠. 저녁때 뵙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장 걱정이 앞섰다. 사실 이날은 아내의 저녁 당직 날이었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딸을 어린이집에 맡겼다. 아내가 당직인 날은 내가 어린이집으로 가서 딸을 데리고 와 저녁을 챙겨야 했다. 아내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핀잔만 돌아왔다. “당장 오늘 저녁 당직 누가 바꿔주겠어?”
급할때 쓰라고 머리가 있는 법. 금세 머리를 굴렸다. 부리나케 어린이집으로 달려갔다. 딸을 안고 인터뷰 장소에 갔다. 홍보실 여직원 한 분이 나와 있다. 사실 미리 상대방 홍보실에 전화를 걸었고, 사정을 얘기하면서 딸 아이를 봐줄 여직원 한명을 요청한 것이다. “정말 죄송해요. 인터뷰 2시간 정도 걸리는데, 딸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
다행히 그 여직원은 친절했고, 아기를 좋아했다. 인터뷰가 끝나니 딸 손에는 사탕이, 품에는 인형이 안겨져 있다.감사하다고 하자 “저도 모처럼 아이와 놀아서 좋았어요”라고 한다. ‘뭐 이런 기자가 있나’ 속으로 욕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그 분께는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일은 한번에 그친 게 아니었다. 기자생활이 거듭될수록 딸을 돌봐야 하는 날엔 이같은 일은 반복됐다. 그럴때마다 아이와 동행해 사람들과 인터뷰했다. 덕분에 딸 아이는 유명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아, 이건 분명히 좋은 기억만은 아니다. 지금이야 웃으며 말하지만, 그땐 진땀 깨나 흘렸다. 맞벌이 설움을 한두번 느낀 게 아니다.
뒷말이 많은 어린이집 폭행 사건은 이 옛날일을 떠올리게 했다. 매일매일 어린이집에 딸을 맡기고, 데리고 오고, 이리저리 뛰면서 느꼈던 복잡한 감정도 살아나고…. 경악스럽다.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아이에 그토록 가혹한 폭력을 행사하다니.
대한민국 부모들이 착잡한 것은 나 같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었던 경험들, 그리고 지금 현재 맡기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대부분 어린이집 원장이나 교사들이 아이에게 따뜻한 정을 주고 있다고 믿지만, 혹시 ‘내 아이가 맞지는 않았을까, 맞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치를 떠는 것이다.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 커지자 당장 CCTV 설치를 하겠다고 난리다. 물론 설치를 하면 좋겠지만, 내 생각엔 그게 전부는 아니다. 폭력교사는 엄벌과 함께 추방해야 하지만, 어린이집을 싸잡아 욕해선 안된다. 선량한 보육교사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도 겪어봤지만)어린이집 환경은 열악하다. 양질의 보육교사를 확보하기 위한 처우 개선 등도 동시에 진행됐으면 좋겠다.
어쨌든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이기적인 생각도 든다. 오랫동안 어린이집을 다닐 수 밖에 없었던 딸 아이에 다시 한번 미안하고, 그럼에도 무난히 커줘 자랑스럽기도 하다. 우리 또래 부모들은 다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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