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줄폭락 배경에 지목된 '엔캐리 청산'
[헤럴드경제=유혜림 기자] 일본 증시가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한 지난 5일, 일본 증권가는 쏟아지는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에 패닉에 빠졌다. '마진콜'은 선물(先物)이나 옵션 계약을 맺을 때 담보로 맡겼던 자금(예치증거금)이 부족해질 경우 이를 채워 달라고 요구하는 것. 마진콜이 걸리면 투자자는 신속히 증거금을 채워야 계약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 이날 일본 증시에서 미쓰이스미토모금융그룹 등 800개가 넘는 종목이 하한가 근처까지 갔다. 쉽게 말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일본 기업 대부분이 하한가 근처를 맛보고 왔단 얘기다.
▶아시아 줄폭락 배경에 지목된 '엔캐리 청산'
시장에선 일본 증시뿐만 아니라 아시아 증시를 뒤흔든 배경에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란 금리가 낮은 국가에서 돈을 빌려 높은 금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에 투자하는 전략을 뜻한다. 그간 투자자들은 초저금리로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미 국채, 호주 주식 등 해외 곳곳에 투자해 왔다. 이를 청산한다는 건 그간 엔화로 빌려 투자했던 자산들을 하나둘 정리한다는 얘기다. 최근 엔화 강세로 환차손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만큼, 외국인들이 줄줄이 '엔캐리' 청산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오게 된 것이다.
▶BOJ "추가 금리 인상 배제 안 해" 시장 화들짝
최근 엔화 강세 배경에는 일본 중앙은행의 달라진 통화정책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간 전 세계가 가파르게 금리를 올려도 나 홀로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해 온 일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다. 주요국들이 미국발(發) 경기 침체를 대비해 금리를 내리는 상황임에도 일본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려 증시에 충격을 주었다는 지적이 많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달 31일 전 세계 주요국 중 유일하게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일본 기준금리는 연 0.25%로, 이는 2008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에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11일 162엔에서 이달 5일 142엔까지 12.3% 절상됐다.
시장의 경계심이 잔뜩 커진 건 바로 이 발언 때문이다. 우에다 총재는 “연내 추가 금리 인상을 배제하지 않는다”, “0.5%를 금리 인상의 벽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면서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금리 인하까지 동반되면 앤캐리 청산은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그간 엔화를 짓눌럿던 원인이 바로 미·일 금리차 확대였기 때문이다.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을 예고한 가운데 미국은 오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에도 나설 수 있다는 관측 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엔화 약세에 韓日 증시도 진정세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폭락장도 엔화 강세와 외국인의 엔캐리 청산 영향인 것으로 증권가는 추정한다. 이에 엔화는 당분간 아시아 증시의 방향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일단 장중 달러당 엔화는 145엔으로 누그러지고 미 국채 수익률도 최근 급락에 따른 일부 되돌림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향후 시장 복원력을 위해선 가파른 엔·달러 환율이 진정되고 기업들의 실적 등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