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8회> 감추어진 승부 82
기찻길 옆은 그렇다 치고…어째서 가난한 동네엔 애들이 많을까? 그리고 그 애들은 어째서 남 꽁무니 따라 뛰기를 좋아할까? 연막소독차가 달려도 그 뒤를 따라 뛰고, 호박이 굴러도 뒤따라 뛰고….
라사의 어린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에서 순식간에 나타났는지, 수십 명이나 되는 애들이 유호성과 현성애의 뒤를 따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가끔은 오히려 애들이 앞서 달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누가 누구를 뒤쫓아 뛰는 건지 아리송할 따름이었다.
“호성오빠! 저기, 저기요!”
무작정 달리는 중이었지만 밀가루 포대를 뒤집어쓴 채로 들어설 곳은 마땅치 않았다. 조금 가난한 동네이긴 하지만 라사는 티베트에서 가장 번화하고 볼거리도 많은 도시 아니던가. 명색이 관광도시인데 이 꼴로 어딜 헤집고 다닌단 말인가?
절망이 극에 달하고 숨이 턱밑으로 차올랐을 때 현성애가 발견한 것이 바로 썬라이즈호텔 간판이었던 것이다. 그런 꼬락서니로 가장 만만하게 여겨지던 장소는 역시 호텔이었다. 호텔에 들어서기만 하면 일단 몸을 가눌 만한 방이 있을 테고, 갈아입을 옷을 구할 수 있을 테고, 허기를 채울 수 있을 터였다. 뒤따르던 동네 꼬마들도 지배인이 알아서 해결해줄 테고, 게다가 여건이 허락된다면…그동안의 고생을 만회하는 의미에서…남녀 간의 회포도 풀 수 있을 테니 그만하면 딱이다, 딱이야!
“그래, 눈 밝아서 좋구먼.”
유호성과 현성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썬라이즈호텔로 들어섰다. 그런데…이걸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필연이라고 해야 할까. 썬라이즈호텔에는 잠시 전에 투숙한 또 다른 한국인 커플이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빨리빨리 침대 방으로 들어가자며 다그치던 여자와 억지로 끌려들어가던 남자, 바로 신희영과 박박진진 아니었던가.
“타쉬 델레! 오~꼬레안?”
야크 뿔과 야크 가죽으로 벽면이 장식된 호텔 리셉션. 바로 그 자리에서 신희영과 박박진진을 맞아들였던 그 호텔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안녕하시냐? 혹시 한국인 아니냐? 하는 의례적인 인사였지만…어째서 한국 커플은 호텔방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숨을 몰아쉬며 할딱이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오케이 꼬레안, 디럭스룸! 더블베드…오케이?”
오케이로 시작하고, 오케이로 끝내는 영어였지만 뜻은 서로에게 완벽하게 통했다. 호텔 직원은 잠시 생각에 젖어 있었다.
‘같은 나라 사람끼리는 서로 붙여놓아야 좋다고 하겠지? 서로 정보를 주고받기에도 좋고, 그러다보면 서로 친해질 수도 있고….’
호텔 직원은 신희영과 박박진진이 투숙한 방의 바로 옆방 키를 유호성에게 넘겨주었다. 마침 먼저 투숙한 두 명의 한국인 손님이 묵는 방도 디럭스 타입이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조건이 맞았다.
룸 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전면 유리창이 드러났고, 좀전에 죽어라고 달렸던 라사 중심부가 한 눈에 드러났다. 자기네를 쫓아오던 아이들이 아직도 길거리 여기저기에 모여 있는 것을 보면서 현성애는 치를 떨었다.
“이젠 안심해도 돼요. 하지만 지갑을 병원에 놓고 왔으니 어쩌지?”
“그건 나중에 생각해요. 아유,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이네요.”
장방형 더블침대에 반듯하게 다림질된 시트가 덮여있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맥이 풀린 까닭일까? 현성애가 먼저 침대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오빠, 그런데 저 옆방에서 들리는 말소리…한국말 아녜요?”
현성애가 벽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가서 귀를 벽에 바짝 붙인 채로 물었다. 가만히 듣자하니… 못 참겠어. 못 참겠다고!’하며 애원하는 아줌마, 분명한 한국 아줌마의 목소리였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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