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5> 감추어진 승부 (89)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이렇게 해서 5개국 관통 랠리대회는 사실상 1부 리그와 2부 리그로 나뉜 모양새로 바뀌게 되었다. 1부 리그에서는 모래와 함께 피가 튀고, 회오리바람 속에 살의와 음모가 함께 날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 목숨이 담보되어 있었다. 하지만 2부 리그에서는 멋진 퍼레이드와 함께 사랑이 싹트고, 돈이 뿌려지고, 위엄과 멋이 돋보이고 있었다.

권도일은 그런 상황이 자못 당황스러웠다. 유호성을 최소한 불구로 만드는 것이 그의 목적 아니었는가. 그런데 일이 묘하게 꼬여가기만 할 뿐이었다. 유호성은 물론 희생양으로 꼽았던 모리타니아 군인들마저 티벳 라싸의 인민병원으로 후송되었다는 사실이 그로서는 아득할 뿐이었다.

이왕에 지상 10cm로 날기 시작한 바에, 그는 조심스럽게 비행하며 이쪽저쪽을 두루 살피고 다녔다. 로열골드의 비행 장치를 가동하여 시속 800km로 이동하며 두 지역을 정탐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자네, 그새를 참지 못하고 비행 장치를 가동했군. 좋다. 어차피 가동했으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서 충분히 성능을 테스트 하라, 오버.”

재벌 2세로부터 이렇게 허락을 받았으니 숨겨왔던 날개를 편 셈이었다. 오로지 유호성을 처단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이 뼈아플 따름이었다. 도대체 구조요원들은 어떤 판단을 내렸던 것일까? 어째서 유호성을 라싸의 인민병원으로 후송한 것일까?

권도일은 한동안 맥이 빠진 상태였다. 만약 유호성이 다시 경기에 투입되지 못한다면 그 원통함을 어찌 달래야 할까? 그는 로열골드를 몰면서도 이따금씩 깊은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번 기회에 아버지 권일주의 한을 풀지 못한다면, 아버지는 한을 품은 채 이승을 하직하게 될 터였다. 휠체어에 앉아 연명하는 삶의 기간이 얼마나 될까?

더욱 난감한 일은… 유민 회장의 외동딸 유한솜의 태도였다. 유한솜은 아버지 유민 회장의 부도덕함을 사죄하기 위해 스스로 권일주의 병수발을 들고 있질 않은가. 제 아비의 파렴치한 행동을 보상하기 위해 스스로 권일주의 종노릇을 하기로 작정했다지 않은가? 어째서 그 아이는 제 아버지를 원수로 여기는 사람에게 사랑으로 다가서는가?

이런저런 상념에 어지럽게 빠져들고 있는데 갑자기 찌찌또또… 금속음의 모르스 부호가 울려왔다. 재벌 2세로부터 들어온 무선교신을 놓친 모양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유호성과 현성애가 랠리 팀으로 복귀하는 중이다. 오버.”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권도일은 갑자기 온몸에 힘이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원수의 아들이 랠리 팀으로 복귀한다니!

“확실합니까? 오버.”

“구조단 헬기로부터 교신 받았음. 어제 사고지점으로 원상복귀 중이라고 함. 꼬박 12시간이나 지체되었으므로 1974년 산 치타는 향후 최고속도로 계속 질주할 것이 예상됨. 사고확률이 높아질 수 있으니 신변보호에 만전을 기하도록, 오버.”

재벌 2세는 예나 다름없이 유호성의 케어에 만전을 기하라고 당부했다. 그가 아무 곳에서나 최고속도로 질주할 때 닥치게 될 위험을 염두에 두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권도일은 기쁘기 한이 없었다. 자기 눈 앞 앞에서 유호성이 스스로 벼랑길을 굴러 내린다면… 그래서 목이 부러지거나 사지가 절단된다면 더 이상 원이 없었다.

“부상 정도가 심하지는 않습니까? 오버.”

“부상은 원래 없었다고 함. 동성연애, 풍기문란… 어쩌고들 떠드는데 도통 뭔 소린지 알아먹을 수 없음, 오버.”

“모리타니아 군인들은 어찌 됐습니까? 오버.”

“그 애들은 랠리 경기를 포기하고 티벳 관광 중이라고 함, 오버.”

동성연애? 풍기문란? 티벳 관광? 권도일은 도무지 재벌 2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원수의 아들이 전쟁터로 복귀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모리타니아 군인들을 이용할 수 없게 된 사실이 조금 섭섭했지만 그다지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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