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국회의원 특권 폐지는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입니다. 그 중 손꼽히는 게 의원은 국회의 동의 없이 회기 중에 체포할 수 없다는 불체포 특권이죠. 이 불체포 특권을 활용해 올 한 해에만 네 번의 구속 위기를 넘겼던 한 의원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난 9일 저축은행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던 이상득 전 의원이 석방됐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같은 날 석방된 정치인이 또 있습니다. 심상억 전 선진통일당 정책연구원장입니다. 아직 대법원의 재판이 진행중이기는 하지만 선고받은 징역 1년의 형량을 모두 채운 그는 구속취소를 신청해 인용받았습니다.

심 전 원장은 소위 ‘공천 장사’를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총선 당시 심 전 원장은 선진당 공천심사위원이었는데요, 비례대표 공천과정에서 한 후보자에게 50억원을 빌려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지역구 후보로는 당선이 어렵겠다고 판단한 이 후보자는 돈을 빌려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비례대표 2번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선진당과 새누리당이 합당해 이제는 새누리당 소속이 된 이 후보자는 김영주 의원입니다.

뒤늦게 공천 장사 혐의가 드러나며 심 전 원장은 지난해 9월 구속됐습니다. 김 의원도 용케 구속은 피했지만 함께 재판에 넘겨졌죠.

1심을 맡은 서울남부지법의 재판부는 지난 2월 심 전 원장과 김 의원에 대해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10월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구속 기소된 심 전 원장과의 형평성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한다”며 김 의원을 구속하기로 결정하고 국회에 체포동의요구서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김 의원은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여야가 체포동의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일정에 합의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서로 체포동의안 무산을 놓고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했습니다.

김 의원은 요행히 구속을 피했지만 항소심 재판 도중 두 차례 더 구속될 위기를 맞습니다.

첫번째 위기는 항소심 재판을 담당한 서울고법 형사2부가 선고 날짜를 7월 4일로 잡으면서 닥쳤습니다. 그날은 국회 회기중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 의원에게는 불체포 특권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1심과 같은 형을 선고받을 경우 꼼짝없이 법정구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민주당이 민생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서 7월 임시국회를 소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선고 날짜가 조금만 미뤄지면 불체포 특권을 이용할 수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재판 전날 갑자기 김 의원 측이 재판부에 공판 재개 및 선고 연기를 요청합니다. 김 의원 측은 재판부에 “심 전 원장에 대해 좀 더 물어볼 것이 있다”는 이유를 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심도 아닌 항소심, 그것도 선고가 있기 직전 날에 갑자기 생각난 ‘물어볼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기자는 그것이 궁금해서 다음 공판에 반드시 들어가보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공판 시각이 또 한번 변동됐기 때문입니다. 공판이 재개된 후 잡힌 첫 공판 일정은 7월 11일 오후 4시20분. 당일 아침까지도 이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후 4시20분에 찾아간 법정은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엔가 공판 시각이 오전 11시로 변경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기자가 재판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공판 시각을 변경했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증거는 없습니다.

당일 공판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재판부와 김 의원 측에 확인해 보았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김 의원은 대체 왜 선고를 연기한 걸까요? 조만간 임시국회가 열릴 것을 알고 구속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시켰다면 분명 비난을 사 마땅합니다.

김 의원의 새 선고일은 7월 25일로 잡혔지만, 법정에서 바로 구속될 위험은 사라졌습니다. 민주당이 김 의원의 당초 항소심 선고날이었던 7월 4일에 임시국회 소집을 청구하면서 임시국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7월 25일 항소심 재판부가 김 의원에 대해 다시 한번 징역 10월형을 선고하면서 김 의원은 또 구속될 위기를 맞습니다. 회기 중이었기 때문에 법정구속을 하지는 못했지만, 법원은 곧 바로 법무부를 통해 국회에 체포동의요구서를 보냈습니다.

체포동의요구서는 8월 12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지만, 여야가 임시국회 회기를 12일 단 하루로 하기로 의결함에 따라 표결에 부쳐지지는 못했습니다. 국회가 또 김 의원의 구속을 막은 것입니다.

12일 단 하루짜리 임시국회 덕에 용케 구속을 피했지만 이는 김 의원에게 또다른 위기입니다. 13일로 넘어가자마자 회기가 끝나며 체포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김 의원은 지금까지 구속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김 의원은 항소심 선고 이후 상고를 했고 이에 따라 사건이 서울고법에서 대법원으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피고인의 신병처리는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가 결정합니다. 회기를 피해 김 의원을 구속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법원 역시 사건 이송으로 김 의원의 신병 처리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100여일의 정기국회 회기중입니다.

총 네 번의 구속 위기를 넘기는 동안 김 의원은 어떤 일들을 해왔을까요?

지난 6월 소음이나 진동이 심한 기계식 주차장을 설치한 업체를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의 주차장법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김 의원이 대표 발의자인데요, 공교롭게도 김 의원은 자신이 소유한 오피스텔에 기계식 주차장을 설치한 업체와 소음 문제로 분쟁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법권을 활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김 의원의 고향인 경남 진주의 도로공사에 특별교부세 5억원이 반영된 것 역시 논란의 대상입니다. 하필 공사 위치가 김 의원과 김 의원 아들의 부동산이 있는 곳이어서, 사업예정지를 김 의원이 나서서 변경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여야는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의 겸직과 영리업무 종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국회법 개정안과 19대 의원부터 의원연금을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내용의 대한민국헌정회 육성법 개정안 등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3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쳐 입이 닳도록 약속했던 ‘특권 폐지’가 조금이나마 이행된 셈이죠.

하지만 당초 바로잡아야 할 특권 중 첫손에 꼽혔던 불체포 특권은 변한 게 없습니다. 반쪽짜리 쇄신이란 비판이 이는 이유입니다.

일반인이란 이유로 구속되고, 국회의원이란 이유로 구속을 면하는 부조리를 언제쯤 보지 않게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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