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제 캐스팅 인생이요? 누군가를 거쳐 막차타는 인생이죠.”
막차로 탄 캐스팅에서 큰 ‘한 방’을 날렸다. 기사 한 건에 댓글 1000여개는 기본. 인터넷에선 ‘민준국 플레이어’가 무한재생된다.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돌았을 때도 네티즌들은 “민준국이 죽일 거야”라고 엄포를 놓았다. 패러디도 쏟아졌다. “편집하면 죽일 거다(KBS2 ‘개그콘서트’)”, “알바 안 시켜주면 죽일 거다(tvN ‘코미디 빅리그’)”. 반응도 대어급이다. “심장이 쫄깃쫄깃해진다”, “연기 쩐다”, “연기대상 안주면 죽일 거다”는 10대들의 언어로 표현된 싱싱한 극찬이다.
데뷔 17년 만에 처음이다. 악역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차오르던 때에 정웅인은 민준국을 만났다.
“내 얼굴이 코믹한 인상은 아닌데, 위로 치켜뜨면 재미있는 눈매도 아닌데, 왜 나를 몰라줄까 생각했어요. 시트콤에서 보여왔던 기존의 이미지가 악역에 캐스팅되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했어요. 악역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맡겨지면 해낼 수 있을텐데 캐스팅이 안됐죠. 악역에 대한 갈증이 컸어요.”
사실 정웅인의 악역 입문은 올 4월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전설의 주먹’을 통해서다. 영화에서 철없고 잔인한 재벌2세를 맡겨준 강우석 감독은 정웅인에겐 각별한 사람이었다. 첫 만남에서 강 강독은 그에게 “코믹이 안 되는 배우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웅인은 그 한 마디로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강우석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영화 ‘전설의 주먹’에서 만난 불과 네 신의 악인은 ‘너목들’을 만나게 해줬다.
“제 캐스팅 인생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거쳐 막차타는 인생이에요. 조수원 감독님이 저를 왜 캐스팅하셨는지 저도 궁금했어요. ‘전설의 주먹’을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강우석 감독님께 감사하죠, 웃음) 그런데 기존의 이미지가 있어 과연 정웅인이 그런 악역으로 공감대 형성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셨대요. 결국 이틀 전에 캐스팅됐죠.”
제작진의 고민은 ‘반전 캐스팅’의 묘미로, 정웅인의 갈증은 시시각각 변하는 눈빛과 표정으로 살아났다. 민준국 캐릭터는 복합장르물인 ‘너목들’의 개별장르의 맛도 살려줬다.
“야, 웅인이, 좋다. 역시 배우야”라고 말하는 선배 김해숙의 칭찬에도 힘을 얻었다. 7, 8회 이후 돌아오는 민준국에 대한 반응에 “악역 연기 제대로 했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기대치가 높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정웅인을 ‘믿고 보는 배우’로 올려놓는 순간들이었다. “배우로 산다는 건 다변화된 인물이어야 한다”는 그의 믿음도 배신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정웅인은 이번 드라마에서 악인을 연기하기 위해 굳이 힘줘 표현하진 않았다고 한다. 내레이션의 농도가 짙었고, 어둠 속에서 등장하는 정웅인의 그림자가 음습했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말론 브란도가 등장하는 것과 같은 호러적인 느낌”도 촬영감독이 만들어줬다. 그는 카메라가 이동하는 공포에 자신의 얼굴과 연기가 잘 희석돼 민준국이 완성됐다는 생각이었다. 이 드라마 한 편으로 ‘세 친구’의 코믹했던 정웅인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는 이웃들에게 “너무 좋아요”라는 칭찬을 들으면서도 “슬슬 뒷걸음질 치고, 자꾸 손을 쳐다보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이 역시 기분 좋은 반응이다.
“사실 ‘너목들’은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날 때 들어온 작품이에요. ‘오작교 형제들’ 이후로 지방공연도 다녔는데, 캐스팅은 잘 안되더라고요. 뭐가 잘 안 맞았어요.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웬만하면 다 하자 싶었죠. 그 때 만났어요. ‘너목들’은 우리 가족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 작품이랄까요? 고기 반찬 하나 더 올라가게 할 수 있는 작품이죠.(웃음)”
‘악역의 맛’을 본 정웅인은 올해는 ‘악역의 해’로 정했다. ‘전설의 주먹’으로 시작한 악역 인생은 ‘너목들’로 정점을 찍고 차기작으로 예정된 드라마에서도 악역으로 열연할 예정이다.
“악역은 두 종류인 것 같아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 둘 중 어느 부류라 해도 평범하게 연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그런 악역이 있기 때문에 드라마의 갈등이 생기고, 가족이 파탄납니다. 극 전체로 볼 땐 굉장히 매력적이고 주목받는 인물이에요. 그런데 드라마만 그럴까요? 세상엔 정말 나쁜놈들이 있어요. 그들도 본인의 삶의 터전이 있겠지만, 상도와 도의를 저버린 나쁜 사람들이에요. 그런 그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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