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의 은퇴학교
A기업의 퇴직 임원을 대상으로 은퇴학교를 진행했다. 대기업 부사장이었던 K 씨는 얼마 전까지 직함에 맞는 차와 기사, 비서까지 회사에서 제공됐다. 지금은 그런 혜택들은 없어지고 고문직 월급만 나오는 상황. 내년이면 이런 예우도 끝이다.
그는 ‘퇴직 후의 달라진 세상’을 경험 중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이 거의 없어, 교통카드 개념조차 없다. 버스를 탈 때마다 부인이 카드로 계산을 했다. 그도 회사에서 준 ‘퇴직 가이드’를 참고해 교통카드를 샀다. 한참 뒤에야 이미 갖고 있는 신용카드에도 같은 교통카드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K 부사장은 자녀의 교육과 결혼 문제에서는 완료형이다. 하지만 두 아이를 유학까지 보내는 등 교육과 결혼에 많은 지출이 있은 만큼 퇴직금과 집 외엔 남은 것이 없다. 자녀를 모두 분가시킨 그는 아파트 평수를 줄여 금융자산을 만들고 중소기업 부사장으로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M 전무는 취미라고는 비즈니스의 연장선인 골프와 술이다. 새벽부터 업무에 몰입해 새벽에 퇴근해도 다음날 다시 일 전쟁을 즐기는 전투형 인간이다.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그는 ‘기러기 아빠’를 자청하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했다.
한국 임원의 생활은 자신을 회사와 같도록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현실이다. 주말까지도 회사에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다. 임원의 효율성을 위해 비서와 기사가 대신 움직여준다. M 전무도 그렇게 10년을 살다가 일반인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루 아침이었다.
바쁜 임원 생활로 배우자나 자녀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 돈은 다시 벌면 적게라도 벌 수 있지만, 굳어진 가족관계는 밝은 변화가 어렵다. 일찍부터 심적 후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가족생활과 함께 운동을 통한 건강관리가 필요하다.
젊은 49세의 L 상무는 퇴임하자마자 바쁘다. 아직 창창한 나이이고, 자녀들도 어리다. 교육, 결혼 모두 남은 일들이다. 최근 젊은 임원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퇴직 문제는 이직은 급하지만, 평직원으로 가긴 어렵다는 것이다. 작은 회사라도 임원자리로 가야 격에 맞는데, 자리가 쉽지 않다. 조직개편 때 들어가지 못하면 해를 넘겨야 하고, 1~2번 기회를 잃으면 사회에서 조직원으로서 그를 찾지 않는다. 그래서 조급증과 퇴직증후군이 생긴다.
한 조사에서 100대 기업 임원의 평균 재임기간이 4.4년으로, ‘임시직원’의 줄임말이라는 농담답게 불안한 자리가 임원이다. ‘직장인의 별’이라는 동경의 대상이지만, 100세 시대에는 부장으로 남아서 늘어나는 정년을 보장받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최근 불황기의 임원은 대부분 연봉 소득이 전부다. ‘임원’이라는 자리가 저금리, 고물가, 고령화라는 상황에서는 ‘만년 고소득 라이프’를 보장해 주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다양한 보직 경험과 함께 전문적인 영역에 대한 경력, 그리고 넓은 네크워크가 100세 시대의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 또한 부부와 자녀, 친구 등 삶의 가치와 그에 따른 재무설계가 일치할 때 가장 바람직한 생애 설계가 될 것이다. 특히, 현역으로 있을 때 ‘은퇴’를 설계하는 것이 당당한 현재와 미래를 만든다.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 연구위원
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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