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김상수기자] ‘고출력, 고성능, 고가의 차가 성능, 디자인, 상품성을 종합적으로 인정받았을 때 부여하는 칭호.’
수퍼카의 사전적 정의입니다. 레이싱카나 그 이상의 성능을 지닌 차가 일반 도로 위를 달릴 수 있도록 양산된 모델이기도 합니다. 가질 수 없기에 더 높아 보이는, 닿지 않기에 더 찬란해 보이는 그런 별과 같은 존재이죠. 수퍼카는.
그래서일까요. ‘상위 0.1%, 그들만의 리그‘와도 같은 수퍼카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습니다. 네, 맞습니다. 99.9%의 이들에겐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입니다. 아반떼 디젤의 연비는 당장 내 문제일 수 있고, 돈을 좀 더 쓴다면 BMW 520d나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의 비교 분석은 모르면 손해, 알면 다 약이 됩니다. 수퍼카? 당신이 1%, 아니 0.1%에 들지 않는 한 알아도 쓸데없고, 오히려 알면 더 배만 아픈 이야기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이 글을 계속 읽는다면, 3가지 중 하나이겠습니다. 0.1% 안에 들거나, 0.1% 안에 들 수 있거나, 0.1%를 꿈꾸거나.
포르테와 포르쉐, 이 한 글자 사이에서 기자 역시 한숨은 깊어가지만, 그래도 닿을 수 없기에 더 빛나보이는 게 바로 수퍼카의 매력입니다. 배 아플 준비가 끝났다면, 이제 수퍼카 그들만의 세상을 살짝 엿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람보르기니 신차인 ‘가야르도 LP570-4 슈퍼레제라 에디지오네 테크니카’ 출시 행사에서 이동훈 람보르기니서울 사장을 만났습니다. 잠깐, 다시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LP570-4 슈퍼레제라 에디지오네 테크니카. 기호 포함 정확히 30자군요. 오너가 아닌 이상 이 이름을 외우고 다니기도 벅찰 지경입니다.
수퍼카의 공통적인 특징은 정확한 판매가격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유인 즉 색상에서 세부 디자인, 소재, 옵션 등 다양한 요소를 모두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맞춤제작)을 하기 때문에 가격이 천차만별이지요. 예전 한 람보르기니 딜러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차량 시트를 가리키며 “시트 하나가 2000만원”이라고 하시더군요. 어지간한 준중형급 차량 한 대가 시트 하나 값인 셈이죠.
이번에 출시된 30자짜리 이름의 람보르기니 수퍼카 역시 3억원대 후반이란 가격만 책정돼 있습니다. 옵션 등 선택사양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 됩니다.
이동훈 사장은 “올해 30대 내외를 판매하는 걸 목표로 세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지난해 대비 30%가량 증가한 수치라고 합니다. 역계산을 해보면 대략 23대 내외가 되겠네요. 수퍼카 브랜드의 또 다른 특징은 정확한 판매대수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공식 가입돼 있는 벤틀리는 예외입니다만,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등은 매년 두루뭉술하게 판매 대수를 공개하곤 합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우선 수퍼카는 판매 대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게 본사의 방침입니다. 판매대수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론, 판매 대수로 비교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속사정도 있습니다. 마치 연예인의 ‘신비주의’ 전략 같기도 하네요.
수퍼카는 돈만 있다면 살 수 있을까? 아닙니다. 돈보다, 아니 돈만큼 중요한 게 더 있습니다. 바로 ‘인내심’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주문제작 방식이기 때문에 계약을 하더라도 현지에서 그에 따라 제작을 하고, 또 전 세계 대기 고객과 싸워 이겨내야만 물량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람보르기니는 일반적인 모델이 5개월에서 6개월가량 소요된다고 합니다. 아벤타도르처럼 ‘무시무시한’ 괴물 수퍼카는 전 세계적으로 주문이 몰리기 때문에 최소 1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네요.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억원을 주고도 1년 넘게 차량을 기다려야 하니, 0.1%가 되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참, 하반기에는 아벤타도르 LP700-4 로드스터가 국내 출시될 예정이라고 하니, 다들 지금부터 부지런히 돈을 모아봅시다. 한 달에 1억원쯤은 모아야 할 듯 하네요.
페라리는 최근 홍보대사로 박인비 선수를 인명해 화제를 낳았습니다. FF는 페라리가 최근 전략적으로 미는 4륜구동 수퍼카입니다. 1년 동안 박인비 선수는 FF를 타고 달리게 됩니다. 빨간색을 박인비 선수가 직접 골랐다고 하네요. 역시 페라리는 빨간색입니다. 그런데 박인비 선수가 당시 행사장에서 소감을 묻자 ”원래부터 드림카가 페라리였다”는 말을 했었는데요, 당시 기자들은 당연한 립서비스로 여기곤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과거에도 박인비 선수가 언론 인터뷰 등에서 드림카로 페라리를 꼽은 적이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물론 파레리와 전혀 상관 없는 자리에서 말입니다. 그때의 발언이 인연이 돼 이번 홍보대사로 이어진 셈이죠.
박인비 선수는 이번에 FF를 협찬받으면서 “드림카인 페라리를 드디어 타게 됐다. 이번 협찬을 통해 열심히 하면 누구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속사정을 듣고보니, 그 말의 울림이 한층 깊어보입니다.
이제 모터스포츠 얘기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수퍼카가 국내 시장에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들의 가장 큰 근거는 바로 도로 여건입니다. FF의 최고속도는 335㎞/h. 가야르도 LP570-4 슈퍼레제라 에디지오네 테크니카의 최고속도는 325㎞/h. 곧 국내 출시를 앞둔 벤틀리의 신형 플라잉스퍼는 322km/h입니다. 시속 20km/h로 강변북로를 달려야하는 한국 도로에서 수퍼카가 무슨 소용인가. 그게 골자입니다.
그래서 최근 수퍼카 브랜드가 대안으로 찾은 곳이 인제 스피디움이고 모터스포츠입니다. 도로에서 달릴 수 없다면, 트랙에서 달리면 된다는 말입니다. 당일치기가 불가능하다시피 했던 영암과 달리 새로 마련된 인제 스피디움은 하루 코스로도 충분하니 수퍼카 브랜드도 호재로 보고 있습니다.
람보르기니 측도 “모터스포츠를 통해 마케팅을 주력할 계획”이라며 “인제 스피디움을 활용한 모터스포츠도 지속적으로 열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당장 이번 주말에도 인제에선 람보르기니의 블랑팡 슈퍼 트로페오 아시아 시리즈가 열립니다. 지난주엔 포르쉐, 페라리 등이 인재를 찾았습니다.
물론 모터스포츠가 활성화되고 다양한 자동차 문화가 늘어나는 건 업계가 크게 반길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좀 더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길 바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기도 하고요. 숙박시설이나 접근성 등에서 크게 떨어지니 수도권에서 경기장을 찾는 관람객이 극히 드문 실정입니다. 지난주 인제에서 열린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르망 24 예선전 등에서 수퍼카 브랜드가 대거 참석했지만, 정작 관람석은 썰렁하기만 했다고 합니다. 인근 군부대에서 단체로 외박을 나온 군인들이 관람석을 채우는, 해외에서 보면 상당히 놀랄만한 장면까지 연출됐습니다. 지방자치단체와 마니아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판매량이나 마케팅 등에서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수퍼카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점차 관심이 늘어나는 건 분명한 현상입니다. 야구를 하는 것만큼 보는 게 즐겁듯, 수퍼카도 타야만 맛은 아니죠. 수퍼카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단순히 판매가 늘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수퍼카를 보는 맛을 아는 자동차 마니아가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자동차가 산업이 아닌 문화로 변모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김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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