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고 외치면서 실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정략에 더 신경쓰는 한국 정치에서과연 주룽지 같은 지도자들이 언제 나올 수 있을까.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의 ‘주룽지 상하이발언 실록(朱鎔基上海講話實錄)’이 요즘 중국에서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2일 출간된 이 책은 나오자마자 중국 서점가에서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올라가 신간 판매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앞다퉈 이 책을 소개하면서 주룽지의 개혁정신을 기리고 있고, 인터넷에선 주룽지를 찬사하고 그리워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같은 날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펴낸 사진집 ‘장쩌민과 양저우(江澤民與揚州)’가 별 반향이 없는 것과 대조적인 ‘주룽지 열풍’이다.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통하는 주룽지는 쟁쟁한 혁명가들을 대거 배출한 후난(湖南)성 출신이다. 마오쩌둥(毛澤東), 류샤오치(劉少奇), 펑더화이(彭德懷), 후야오방(胡耀邦)의 고향이 바로 후난성이다.
1928년 후난성 창사(長沙)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주룽지는 10살 때 어머니마저 사망하자 삼촌 집에서 자랐다. 수재였던 그는 1947년 칭화(淸華)대 전기공정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동북인민정부 공업부에서 공직을 맡았으나 1957년 ‘반우파 투쟁’때 우파로 몰려 당적을 박탈당하고 직위해제됐다. 문화혁명 기간에는 하방되어 5년 동안 돼지를 키우기도 했다.
그러나 덩샤오핑(鄧小平)이 정권을 장악한 1978년 저명한 경제학자 마훙(馬洪)의 추천으로 중국사회과학원 공업경제연구실 주임으로 컴백하면서 굴곡진 인생을 펴게 됐다. 1987년 상하이 시장이 됐고, 1991년 국무원 부총리로 발탁됐다.
1998년 3월 총리에 오른 그는 국유기업, 금융기관, 정부기구의 3대 개혁을 추진하는 등 중국의 변혁을 꾀했다. 특히 그는 부정부패 척결을 추진하면서 기득권층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자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99개는 탐관의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 것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때문에 그는 ‘중국 경제의 차르(황제)’ ‘현대판 포청천(包靑天)’ ‘철면(鐵面) 재상’ 등으로 불려진다.
중국인들이 ‘돌아온 주룽지’에게 열광하는 배경에는 과거에 대한 추억뿐 아니라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중국 국민들은 부패 관료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주룽지와 대비하면서 개혁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국가정보원 댓글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새누리당의 한 국회의원이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서 수사과장에게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정치인들의 지역감정 조장 발언이 또다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국민들의 갈증을 풀어주기보다는 더 목마르게 하는 ‘구태’의 재연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고 외치면서 실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정략에 더 신경쓰는 한국 정치에서 과연 주룽지 같은 지도자들이 언제 나올 수 있을까. ‘관’을 준비하면서까지 비장한 각오로 국민들을 위해 권력을 행사했던 주룽지를 보면 ‘중국의 힘’이 과연 어디서 나오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jym6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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