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살육 기계가 아닌 완벽한 비행체를 향한 그의 열정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의 꿈은 수많은 이들에겐 악몽이 됐다. 그의 꿈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 일본 정계와 사회가 급속히 우경화하고 있는 가운데, 군국주의 및 침략전쟁 미화 논란에 휩싸인 ‘바람이 분다’가 국내 개봉(9월 5일)을 앞두고 29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최근 직접 나서서 글과 인터뷰를 통해 아베 정권을 비판한 일이라든가 위안부에 대한 사과 및 보상을 촉구한 행보에서 보듯, 이 영화는 일본 내 극우세력의 입장과는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특유의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멜로드라마와 ‘중립’을 가장한 반전평화 메시지 속엔 과거의 침략 전쟁을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짙게 배어 있다.

‘강한 일본’, ‘기술의 일본’에 대한 향수와 지향도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적어도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이 침략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며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주변국들의 주권을 유린했던 시대를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 청년의 아름다운 사랑이 이루어졌던 낭만의 시간으로 추억하고, ‘기술 입국’이라는 일본의 꿈이 태동했던 신화의 시간으로 불러낸다. 대량살상의 핏자욱을 원색의 아름다운 동화로 채색하고, 무차별적인 파괴와 폭력의 시대를 꿈과 열정, 창조의 시간으로 대체한 ‘바람이 분다’를 아련한 감성의 멜로 드라마로 받아들일 것인가, 일본의 우경화를 합리화하는 정치적 텍스트로 읽을 것인가는 관객의 몫으로 남았다.

‘바람이 분다’는 소년시절부터 비행에 대한 꿈을 갖고 있던 주인공 ‘지로’가 비행기 설계자로서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과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났던 한 소녀와 만나고 헤어지며 이뤘던 사랑을 그렸다. 그 주인공은 영화의 마지막 헌정사에 나오듯, 실존인물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郞)다. 그는 대학졸업 후 일본의 대표적인 전범기업으로 꼽히는 미쓰비시중공업에 입사해 설계팀을 이끌며 2차 대전 당시 일본 해군 주력 전투기 ‘제로센’을 개발했다.

영화는 전쟁 장면을 그리진 않지만 주인공을 통해 한 기술공학자에겐 아름다운 꿈인 비행기가 현실에선 살육과 파괴의 기계가 되는 숙명을 긍정한다. 뿐만 아니라 지로는 “우리 나라는 왜 가난할까”라며 동료와 함께 기술로 조국을 일으키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거듭 보여준다. 미쓰비시는 전범 기업이 아니라 당시 청년들이 기술입국, 조국 근대화를 위해 꿈과 열정을 바쳤던 곳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이탈리아 비행설계가 카프로니가 “내 인생 가장 창조적이었던 10년을 바쳤지만 그 끝은 너덜너덜했다, 나라가 망했으니까”라고 말하거나, 지로가 “내 비행기를 탄 이들이 한 명도 안 돌아왔다”는 쓸쓸한 고백을 할 때, 이 말은 ‘반전의 메시지’보다는 단지 조국 패전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발언으로 읽힌다. 친절하고 헌신적이며 기계공학에 관한 집착을 가진 ‘모범적이고 양심적인 일본인’으로 묘사된 주인공은 그래서 차라리 극악한 전범보다 더 위험한 것이 아닐까?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