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노사문제 개입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자율적인 문제해결을 어렵게 한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노사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법 테두리 내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 주는 게 중요하다.
최근 ‘갑을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권력을 가진 갑이 힘없는 을에 대해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고 보고, 불합리한 갑을관계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을을 지킨다는 ‘을지로’, 을을 죽이는 계약이라는 ‘을사조약’이란 말도 만들어냈다.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일감 몰아주기 방지 등 갑을관계 청산을 표방한 법률 다수가 통과됐으며, 9월 정기국회에는 더 많은 법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노동계 역시 이런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노사관계에서도 불합리한 갑을관계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사관계는 갑을논리가 적용되는 영역이 아니다. 헌법과 법률은 근로 3권을 인정해 노사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노와 사 어느 한 쪽이든 힘을 가지고 횡포를 부리거나 부당한 행위를 저지를 경우 법의 엄격한 제재를 받게 된다. 노사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 견해 차이를 좁혀나가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경우에 따라 갈등ㆍ반목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소한 제도적으론 노사가 힘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정한 룰이 마련돼 있다.
최근 일부 정치권이 사용자를 갑, 근로자를 을로 간주하고 ‘을 지킴이’를 자처하면서 노사관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다수의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이 당선되고, 노동문제를 전담하는 환경노동위원회는 국회 여러 상임위 중 유일하게 여소야대로 구성됐다. 든든한 우군을 얻은 노동계는 이제 웬만한 개별 기업 노사문제는 대화와 교섭을 통해 풀기보단 일단 국회로 먼저 가져간다. 노동계가 기업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 정치권은 어김없이 화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은 노동계의 요구 관철을 위해 기업의 총수를 국회로 불러들여 직접 압박하기도 한다.
심지어 정치권은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와 같이 사법부로부터 법적 정당성을 인정받은 사안까지도 결론을 뒤집으려 한다. KT의 사례에서도 노동계가 문제를 제기하자 정치권은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고, 실제로 상당기간 특별근로감독이 이뤄졌다. 노사관계에도 갑을관계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맞는다면, 이제 갑은 정치권을 등에 업은 노동계일 것이다.
최근 노동계가 집중적으로 이슈화해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이 진행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조사 결과 노동계ㆍ일부 정치권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이 난다 해도 기업 흔들기는 계속 진행될 공산이 크다. 수십년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얻은 기업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의 노사문제 개입은 노사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자율적인 문제해결을 어렵게 한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노사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법 테두리 내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 주는 게 중요하다. 또 사법ㆍ행정기관의 판단도 존중해야 한다. 원하는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노동계가 정치권에 기대고, 정치권이 해결사를 자처하는 일이 더는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노사관계가 합리적으로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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