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7> 감추어진 승부 (11)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N-Dos 단의 특공대원으로부터 최루가스가 혼합된 모래세례를 받은 유호성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코-드라이버 석에 앉아있던 현성애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침 V8 6,000cc 엔진을 풀가동하여 500마력의 폭발적인 힘을 내쏟으며 달리던 중이었다. 그 상황에서 드라이버가 눈을 뜰 수 없다는 사실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오른쪽 커브! 타이트… 잠깐 직선!”

너무 급작스런 일이었으므로 유호성은 머신을 세울 수도 없었다. 내리막길이었고 도로 폭은 좁았으며 포장도 되어있지 않았다. 잠시 강력한 브레이킹을 시도하자 라이닝에서 푸른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르고 이대로 죽는 것일까?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공포! 하지만 오히려 코-드라이버 현성애가 침착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재빨리 방향을 바꾸라는 주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직선으로 달릴 것을 그녀는 주문했다.

“뉘르부르그링의 하첸바흐!”

머신이 휘청하며 외로 쏠리자 그녀는 이렇게 고함쳤다.

“오케이, 하첸바흐!”

유호성은 그녀의 주문대로 핸들을 틀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 좁디좁은 비포장 내리막길에서 최고 속도로 내리 쏘던 중에 최루가스를 맞았으니 안정을 찾기는 어려웠다. 오로지 그녀의 직감에 따를 뿐이었다.

도대체 ‘뉘르부르그링’이란 무엇일까? 어째서 현성애는 이 절박한 순간에 ‘뉘르부르그링의 하첸바흐’를 외친 것일까?

뉘르부르그링이란 일방통행 길을 무제한의 속도로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동차 트랙이다. 1920년 무렵에 독일 자동차 산업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해 독일 뉘르부르그 성과 주변 마을 주위에 조성된 자동차마니아들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무지무지하게 어렵고 위험한 길, 22.81km에 달하는 노던 루프와 5.148km의 GP트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린 헬, 즉 녹색지옥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길이다. 트랙 주변에 울창하게 나무들이 자라고 있으며 에펠 산 숲길을 가르는 고도 차이 때문에 드라이버들은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길을 최고 속도로 달려야만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첸바흐는 본격적으로 험한 길이 시작되는 뉘르부르그링의 시작지점이다. 하첸바흐에 들어서면 타이트하게 회전하는 내리막 커브를 시작으로 오른쪽, 직선, 다시 오른쪽, 그리고 빠르게 왼쪽의 순서로 스티어링 휠을 돌려야 한다.

길이 끊어진 듯…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직감으로 운전해야 하는 드라이버들은 마약을 먹은 것처럼 흥분상태에 빠지기도 하는 그 길.

“됐어. 성공이야. 하지만 아직도 속력을 줄일 수 없어.”

“브레이킹은 위험해요. 계속 달려! 고저 차이 30미터, 140도 커브!”

현성애는 아직도 눈을 뜰 수 없었다. 하긴 최루가스가 직접 눈 속으로 침투했으니 눈을 뜨더라도 한동안 앞을 가늠하기는 힘들 터였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눈앞을 훤히 내다보는 것처럼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어디로 추락할지 몰라. 갑자기 속도를 줄여도 어디로 튕겨나갈지 몰라. 미치겠군.”

“나만 믿어요. 1초 후에 플루그프리츠!”

플루그프리츠란? 하첸바흐에 이르기 전 4km지점, 오르막길이 갑자기 낭떠러지처럼 내리막길로 바뀌는 코너로서 뉘르부르그링을 통틀어 가장 험악한 지역이다. 그렇다면 1초 후에는 추락에 버금가는 충격을 감수해야만 하겠지.

유호성은 아직도 눈을 뜰 수 없었다. 오로지 현성애의 직감에 따를 뿐이었다. 그녀와 함께 드라이빙 훈련을 받았던 뉘르부르그링의 산길이 훤히 눈앞에 되살아나는 느낌 속에서….

<계속>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