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대한민국 서울의 겨울은 11월부터 시작된다.
불과 며칠전까지만해도 “더워 죽겠다”던 사람들은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초겨울 한기에 “추워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는 12월이 되면 올해 겨울은 또 어찌 보낼지 ‘답’이 안 나온다. 이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오긴 올 건지 말이다.
영원할 것만 같은 겨울도 결국은 끝이 난다. 때때로 몰려 오는 기습한파가 입춘을 무색하게 하지만, 햇살 내리쬐는 날엔 어느새 봄 냄새가 실려오는 듯 하다. 게다가 남쪽에는 벌써 매화도 동백꽃도 수줍은 꽃망울을 터뜨렸다고 하지 않나.
겨울의 끝자락에서, 성미 급한 여행자가 여름을 찾아 떠났다. 비행기로 6시간. 푸켓(태국)행 이코노미석에 구겨 넣은 짧은 다리 때문에 좀이 쑤실 때쯤 두 계절을 앞당겨 여름 낙원에 닿았다.
▶먹고 자는 것 빼고 아무 것도 안할 수 있는 당당함이여=베이스캠프는 앙사나라구나 푸켓(Angsana Laguna Phuket). 싱가포르 럭셔리 호텔 체인 반얀트리 계열의 고급 리조트이지만 시기에 따라, 방 크기에 따라 조금 더 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대중적인 리조트다. 푸켓섬 서부 방타오(Bang Tao)만의 복합휴양단지 내에 위치해 있으며 라군(Lagoonㆍ潟湖)을 둘러싼 단지 내에 6개의 고급 리조트들이 밀집해 있다.
새벽 2시 도착. 푸켓국제공항 입구에서 한 택시 기사가 호객을 한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1200바트를 부른다. 아차, 환율이 얼마인지 계산을 안하고 왔다. 한국어로 된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환율과 대략적인 택시비를.
100바트는 우리 돈으로 약 3300원정도. 푸켓에서 20~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는 보통 700바트 정도로 택시기사와 사전 가격 협의를 한다고 한다. 이런 바가지 장사꾼을 보았나. 큰일날 뻔 했다. 공항 밖으로 빠져나오니 더 많은 택시 기사들이 대기해 있다. 700바트를 부르니 망설임없이 시동을 켠다. 여행지에서는 무조건 많이 물어보는 게 상책이다. 나중에 안 사실. 택시요금 700바트조차도 관광객 전용 물가다.
연 평균 27도 정도인 열대의 푸켓은 지금이 건기다. 생각보다 덥지 않은 밤 기온 탓에 물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택시 기사의 말.
“걱정 마세요. 푸켓의 날씨는 덥거나(Hot) 더 덥거나(Hotter) 둘 중 하나니까요.”
앙사나라구나 수영장은 푸켓 리조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으로 유명하다. 1층 객실 바로 앞에서부터 연결된 수영장이 리조트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수영장엔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대다수다. 특히 아시아인들보다 유럽인들이 더 많이 찾는 이 리조트에는 웃옷을 벗은 채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아빠들이 푸켓판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연출하곤 한다.
어쩜, 유럽 엄마들은 애를 낳고도 늘씬하다. 1년에 한번, 한국이 아닌 곳에서만(?) 꺼내는 비키니를 입고, 선베드(Sun bed)를 장악하고 있는 유럽 미인들 사이에 끼었다. 기죽지 말 것. 아무도 안 쳐다보니까.
기승전‘팟타이’다. 푸켓의 먹을거리는 팟타이로 시작해 팟타이로 끝나도 전혀 물리지 않는다. 각종 해산물이 풍부한 푸켓에서 먹는 팟타이는 풍미가 가득하면서도 담백한 맛이다. 게다가 풀바(Pool bar) 바텐더가 추천하는 무알콜 열대과일 칵테일과 함께라면 비키니 군살 쯤 어떠랴. 먹고 또 먹어도 좋다.
▶카약킹ㆍ스탠드업패들…해양 스포츠로 군살 1인치 숨기기=먹고 자고 쉬는 게 휴양지의 미덕이지만, 바다를 앞에 두고 꿈틀대는 ‘원시 본능’은 어쩔 수 없다. 열대 태양에 그을린 구릿빛 팔뚝의 힘줄을 솟아 오르게 만드는, 아드레날린 넘치게 만드는 본능이랄까. 노를 젓는 일 말이다.
라군을 따라 즐기는 카약킹(kayaking)과 스탠드업패들(Standup paddle)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길쭉한 나뭇잎 모양의 배에 2명이 양날의 노를 저어 움직이는 카약은 한번도 노를 잡아보지 않은 사람들도 다루기가 쉽다. 균형은 배가 알아서 잡아준다.
스탠드업패들은 말 그대로 서서 패들(Paddle)을 젓는 방식이다. 앉아서 타는 카약보다는 조금 더 운동신경을 필요로 한다. 배의 가운데에 서서 두 다리로 균형을 잡고 패들을 양쪽으로 저어가며 움직인다. 짧고 튼튼한 두 다리의 소유자인 여행자는 물고기 만난 어부처럼 패들을 저었다. 이런, 너무 쉽다.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해양 스포츠인 카약킹과 스탠드업패들의 묘미는 배보다 노를 젓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 ‘신선놀음’을 즐기고 싶으면 노를 천천히 젓고, 선수처럼 스피드를 즐기고 싶으면 빨리 저으면 된다. 1시간 가량 노를 젓다 보면 팟타이 과식으로 늘어난 군살이 1인치는 줄어드는 느낌을 받는다. 운동 후 근육의 뻐근함은 언제나 옳다.
▶관광객들의 유흥천국 ‘빠통시장’…애 재우고 가? 말어?=휴양지에서 여유롭고 느긋한 2박 3일을 보내다보면 어느새 사람 소리, 사람 냄새가 그리워진다. 고작 이틀새 말이다. 천생 인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인가.
리조트에서 푸켓섬 남쪽으로 30분. 빠통비치(Patong Beach)에 인접한 빠통시장은 푸켓의 대표적인 야(夜)시장이다. 밤이 되면 더 많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이 곳은 24시간 잠들지 않을 기세로 떠들썩하다. 화려한 성인 클럽 조명이 거리를 붉게 물들인 이 곳에는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관광객들이 대다수인 가운데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도 종종 눈에 띈다. 애를 데리고 나와도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유흥 천국인 이 곳에 말이다.
트랜스젠더 무희들과 거리의 퍼포머들, 온갖 잡상인들이 모여 만드는 빠통시장은 휴양지의 역동적인 에너지와 동시에 애잔한 정서를 뿜어낸다. 호기심 많은 여행자가 맥주 한 캔에 900바트(약 3만3000원)의 거금을 주고 들어갔던 ‘19금 클럽’은 이내 맥주를 씁쓸한 맛으로 바꿔 놓는다. 너나 나나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이 돌연 ‘쓰나미’처럼 몰려오기 때문이다. 상상은 자유. 단 즐기지는 말 것을 엄중히 제안한다.
빠통시장에는 ‘툭툭’이라는 이름의 삼륜차들이 도로변에 늘 대기중이다. 푸켓에서는 자동차를 렌트하는 것보다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비용면, 안전면에서 훨씬 낫다. 가격은 반드시 사전 협의할 것.
비행기 대여섯 시간과 2시간의 시차를 우습게 봤다간 몸이 고생한다. 게다가 두 계절을 앞질러 떠나는 여행이니 만큼 현지 날씨에 맞는 옷가지를 준비하는 것은 물론 마음가짐도 준비해야 한다. 겨우내 웅크렸던 몸의 혈관들이 순식간에 확장되는 듯, 몸이 무겁고 늘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첫날 만큼은 무조건 쉬는 게 좋다. 많이 쉴수록 남는게 휴양지 여행이다.
글ㆍ사진(푸켓)=김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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